법률문제가 있어서 상담하러 온 내담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거나 무언가 감추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담자가 속상한 감정에 치우쳐서 느낌을 사실인 듯이 설명하다 보면, 실체적 진실이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워서 스스로도 잘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간혹 내담자가 자기에게 불리할 것 같은 이야기를 변호사에게 해주면, 변호사가 알고 있는 불리한 내용이 법원에 알려져서 재판에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의로 이야기를 누락시키는 경우도 있다.

재판이란 항상 상대방이 있다. 특히 민사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있고, 사건의 발단이나 진행과정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는 당사자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숨기다 보니까, 결국은 그 진실을 파헤치려고, 법정에 증인도 세우고, 증거도 제출하고, 감정도 하고, 검증도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불리한 내용 고의로 이야기 안하는 경우도

그러나 이런 입증방법을 거친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이 완벽하게 밝혀진다는 보장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증인이 위증하는 일도 있고, 증거자료를 위조하거나 변조해서 제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야 사건을 부탁받은 의뢰인의 입장에서 한쪽 입장만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주장 사실에 대한 입증방법을 제출하면 되지만, 판사는 원고와 피고 양쪽의 주장과 증거자료를 검토한 결과에 따라서 어느 쪽의 주장이 설득력 있는 가를 판단해서 승패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민사재판이야 설령 패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것이 형사재판인 경우에는 피고인의 신체와 생명에 악결과를 초래할 때가 있다. 형사재판에서 증거가 없이 혹은 위조된 증거에 의해서 범인으로 몰리거나 억울한 처분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초래된다. 따라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참으로 복잡하고 엄격한 재판절차를 부과하고 있다.

형사재판에서는 범죄의 객관적인 결과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객관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행위자에게 주관적으로 그러한 의도 즉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주관적인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서 주머니에 단돈 한푼 없는 사람이 PC방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고 라면과 과자를 시켜먹고 나가면서 돈이 없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단돈 몇천원을 지급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때 판결문에는 ‘...누구는 돈을 낼 능력도 없고 돈을 낼 의사도 없이 PC방에 들어가서...’라는 내용이 기재된다. 이 경우에 피고인은 PC방 주인에게 게임와 라면값을 지불할 돈을 가진 듯이 속이고 게임을 하였다는 것이 주관적인 요건이 되는 것이다.

형사재판인 경우 악결과 초래할 수 있어

그러나 어떤 사람이 사업을 잘하고 있었는데 사업확장을 위해서 10억원의 돈이 필요해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고 하자. 돈을 빌린 사람은 사업이 잘되고 있었기 때문에 10억원 정도는 3년이면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변제기를 3년으로 정하고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렸고 약속한 이자를 매달 꼬박꼬박 지급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잘 될 줄 알았던 사업이 그만 생각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경기가 급하락하는 바람에 돈을 빌린지 일 년도 채 안돼서 확장했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부도상태에까지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에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빌려준 10억원 원금을 고스란히 떼이게 생기게 되었다는 불안감으로, 돈을 빌려간 사람이 당초에 변제할 생각이 없이 돈을 빌렸다고 고소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돈을 빌려간 사람이 확장하는 사업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돈을 빌려서 진행하다가 실패를 하였다면, 당연히 민사적으로는 빌린 돈을 변제하는 것이 마땅하더라도, 돈을 빌릴 당시에 피고인의 사업이 잘되고 있었다면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 경우에 돈을 빌려간 사람이 돈을 빌려간 당시에 그 사업이 이미 사양산업에 빠져들었고, 향후에도 그 사업이 잘되지 않아서 빌린 돈을 변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경우는 어떠한가. 아마도 고소를 한 사람은 돈을 빌릴 때 그 사업이 사양산업화되고 있어서 변제할 수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속이고 돈을 빌려가서 변제하지 못했다고 유죄를 주장할 것이고, 빌린 사람입장에서는 어떻게 향후에 망할 것을 알고 돈을 빌려서 투자를 했겠느냐고 항변을 할 것이다.

만약 이 사례에서 돈을 빌려간 사람이 미필적으로라도 사업확장이 무리해져서 사업이 부도날 것을 알 수 있었다면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서 모두 실형이 선고되는 것은 아니다 그 돈을 빌린 경위나 피해자의 피해회복의 가능성,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고려되어서 형이 정해진다.

자백여부 양형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

최근 도박으로 재판을 받는 연예인에게 집행유예의 구형을 한 사례와 소위 우유주사라는 프로포폴를 맞았다가 실형을 구형받은 것을 놓고, 후자는 자백을 하지 않아서 괘씸죄가 적용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 형법에는 괘씸죄는 없다. 다만 자백여부는 형사소송절차에서 양형을 정하는 중요한 법률적 요건이다. 특별히 범행을 부인할 만한 입증자료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무모하게 항변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형사법정에서 자백을 하는 경우에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지만…’이라고 변론을 하는 것도 그 이유다. 정직한 변론이 최선의 변론인 경우가 많다. /안귀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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