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진행되는 과학수업과 파란 눈의 원어민 교사들, 그리고 영어를 써야만 대화가 가능한 같은 반 친구들...」

이렇게 외국 유학을 간 것처럼 하루 종일 좋든 싫든 영어를 써야만 공부할 수 있는 국제학교가 지금 송도 경제자유구역 안에 지어지고 있다.

내년 4월 건물이 완공되면 각종 행정절차와 교사·학생 모집 등을 거쳐 9월부터 수업을 시작한다.

경제자유구역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의 편의를 위해 만드는 학교지만 송도에 이미 입주한 한국 학부모들의 관심도 대단하다.

학생 정원의 30%는 내국인 차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종의 국제학력인증 제도인 IB코스(외국 유명 대학들이 신입생을 평가할 때 주요 평가기준으로 삼는 교육과정)와 AP제도(대학교과목을 고교에서 미리 이수하고 대학학점으로 인정받는 선(先)이수제)를 운영하기 때문에 자녀의 외국유학을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눈길이 뜨거울 수 밖에 없다.



서울대가 올해부터 재외국민 특별전형을 폐지키로 한 것도 국제학교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서울대를 노리던 재외국민 자녀들이 국제학교를 통해 차라리 외국 유명대학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사 한 명당 학생 수도 열 명 밖에 되지 않는다. 학제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모든 과정이 포함된다. 유치원에 입학해서 고교과정을 거친 뒤 곧바로 유학을 가면 평생을 외국에서 공부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개교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걱정도 적지 않다. 송도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아직 많지 않아서 2천 백 명이나 되는 정원을 다 채우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대만큼 외국기업이나 연구소들이 입주하지 않고 있어서 당장 내년에 몇 명이나 입학할 지 알 수 없다. 2만 달러가 넘는 학비도 문제다. 체육, 음악, 미술 같은 방과 후 활동비까지 포함하면 3만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중구 운북동 복합레저단지 안에 지을 예정인 영종국제학교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당초 송도국제학교와 함께 개교할 예정이었지만 건물 착공은 커녕 인천도시개발공사와 노드 앵글리아(NORD ANGLIA) 그룹 사이의 본 계약 체결마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1만 5천 평 넓이에 송도국제학교의 절반 정도인 천 50여 명을 모집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협상진전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영리법인인 노드 앵글리아 측은 과도하게 저렴한 토지 임대료와 향후 학교운영에서 적자가 날 경우 사업비 회수 보장까지 요구하고 있어서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교육기관 설립 특별법’을 바꾸지 않는 한 영리법인인 노드 앵글리아가 학교를 세우는 것조차도 힘들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당초 송도지구 2개, 영종지구 2개, 청라지구 1개 등 5개의 국제학교를 세울 방침이었다.

이중 개교가 가시화된 곳은 송도국제학교 한 곳 뿐이다. 사업진행이 지지부진한 것과 함께 국제학교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도 증가하고 있다.



자칫 인천교육이 ‘국제학교’대 ‘비국제학교’로 나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들의 소외감도 커지고‘개천에서 용나기’는 더욱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인천시와 시교육청, 서구청이 함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구 가정동에 2만평 규모의 내국인을 위한 가칭 ‘인천국제학교’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2010년 3월 개교 예정이고 모집대상은 인천에 사는 학생들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이나 인천 거주 외국인 자녀에 대한 특별전형도 한다.

수업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된다. 다른 국제학교들에 맞서기 위해 역시 IB코스를 운영하고 학비는 일반 공립학교와 비슷한 연간 150만 원 정도 될 예정이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진입하기 힘든 학부모들로선 가뭄의 단비 같은 희소식이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만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인은 한국학교의 교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상당수 원어민을 교사가 아닌 강사로 채용해야 한다. 영어에 능통한 내국인 교사들과 병행 수업을 하게 된다.같은 반 옆자리 친구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 아니라 그냥 한국학생이다.

국제학교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을 약간 주저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시 교육청에서는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 시 교육청 유진호 장학사는 ‘서구 국제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경제자유구역 내의 우수한 학생들까지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내외에서 모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국 유명대학 진학률도 결코 다른 국제학교에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또 하나의 외국어고등학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학교설립 목적이 국제인재 양성인지 특목고 설립인지 분명치 않다는 얘기다.

내년부터는 당분간 인천 전역에 국제학교 열풍이 불 전망이다.

외국 기업인 자녀들의 편의를 돕고 투자유치를 활성화시키기도 하겠지만 어떻게든 자녀를 입학시키려고 위장전입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는 ‘강남8학군’같은 사태가 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인천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휘둘리지 않도록 하려는 교육 당국자들의 열의와 관심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신문=라디오인천 특약 임도현기자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