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용히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느리게 가는 버스’란 재미있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저자가 캐나다로 이민 간 4년 동안 겪었던 이민생활의 경험과 성찰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민자들은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민이 고국을 떠나는 큰일인 만큼 이민과 관련해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느리게 가는 버스’에서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는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그는 캐나다로 이민 가기 전 13년 동안 국내에서 기자로 일한 사람 이였습니다. 또 그는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 때문에 맘고생을 많이 했던 장애아 부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01년 뉴욕으로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캐나다 토론토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느리게 가는 버스를 보았습니다. 책은 바로 그 느리게 가는 버스를 중요 모티브로 해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느리게 가는 버스’의 내력은 이렇습니다. “버스기사가 정류장에 차를 세우더니, 어느 승객의 손을 잡고 함께 내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 승객이 혼자 안전하게 길을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 기사가 안내를 했다.

승객은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바쁜 출근 시간에 버스기사가 차를 세우고 시각장애인을 돕는 그 광경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일반 승객들이었다. 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 출근길 버스가 몇 분 동안이나 멈춰 서 있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쁜 아침 출근 길 중에 버스 기사가 보여준 친절이 그에게는 놀라운 일이였지만 더 놀라운 것은 시각 장애인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해 버스 기사가 하차하고 그 사이 출근길 버스가 수분 동안이나 멈춰 서 있어도 버스 안에 있는 승객 중 어느 한 사람 불평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그에게는 충격에 가까운 놀라운 일이였습니다. 캐나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한국사회의 삶의 질’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 우리사회의 저변에는 사회복지가 일부 계층에 대한 구호나 시혜를 넘어선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사회복지의 사업주체나 사업전달체계 또는 사업종류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의 범위가 커지고 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익창출에 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던 기업들이 사회공헌 부서를 두고 또 사회복지사를 직원으로 채용하는가 하면 정부는 민관협치의 거버넌스를 언급하면서 동사무소를 주민복지센터로 전환하고 각 시 군 구에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두어 지역 주민들이 지역사회복지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사회복지 기관 뿐 아니라 문화단체나 체육단체, 의료기관 또 교육기관이나 고용촉진 기관까지 ‘복지’를 중심으로 서로 연계하는 주민통합서비스 제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접근성 높은 주민생활지원 서비스 망을 구축해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폭발적 사회복지 욕구를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고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을 느리게 가는 버스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책의 저자를 더 놀라게 했던 느리게 가는 버스 승객들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다려 주고 참아주고 또 그것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다수의 말없는 버스 승객들 속에 있는 ‘배려의 마음’입니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그들 때문에 느리게 가는 버스가 가능합니다. 그들 때문에 느리지만 아름다운 버스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 배려하는 마음은 사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일지 모릅니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복지 자원을 확충하고 사회복지수혜를 넓히고 사회복지전달체계를 정비하고 사회복지전문화를 꾀해야 할 시점에 서 있는 우리에게 정말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느리게 가는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바쁜 시간’을 시각 장애인에게 나눠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배려하는 마음은 시간 같은 무형의 자원까지 사회복지자원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기다림이나 친절 같은 예의범절의 덕목들도 얼마든지 사회복지적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것을 느리게 가는 버스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곧 다가올 폭발적 사회복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사회복지적 가치를 개발하고 그 가치로부터 새롭게 창출될 수 있는 사회복지자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느리게 가는 버스’는 마음의 큰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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