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좋던 날씨가 아침부터 흐렸다. 오늘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을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보면 나는 정말 하루 사이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속으로 천만 다행임을 생각하며 하루의 일정을 시작했다.

밀림 지대를 2시간 넘게 내려와서야 날씨는 쾌청하게 개는 듯 했다.

하산 중에 정글 숲 속에 여러 마리의 원숭이들을 목격할 수 있었으며, 산행 왼편 밀림 숲 사이로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봉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1시간가량을 더 이동하여 간드룽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내리막 계단길이다. 그 힘들게 올랐던 계단길을 코스를 달리하여 이제 계단길로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또 다시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달픈 네팔인들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걱정이다. 며칠째 계속되는 강행군에 왼쪽 무릎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무척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힘들더라도 내려가야지….




고라파니 마을학교 전경-해발 3200m가 넘는 고지대 사람들을 위한 학교로서 안나푸르나 남봉을 뒤로 한채 아이들이 농구를 즐기고 있다.

고통을 감내하며 2시간가량을 힘들게 내려와 점심 식사 장소인 뀌미 롯지에 도착했다.

식사를 마치고 물레방아에 들러 잠시 머리를 식힌 후 계곡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걷고 걷기를 계속하여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저녁 숙소인 사울리 바자르 롯지에 도착하였다.

샤워로 피로를 가셔낸 후 따뜻한 홍차를 여러 잔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다리의 통증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정말 힘든 하루였다. 그 지겨운 계단식 내리막길 때문에…

저녁은 닭을 직접 잡아 찹쌀과 함께 끓인 백숙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린 배를 실컷 채우고 나니 피곤함이 일순간에 밀려들었다. 곧 바로 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내일은 포가라로 이동하여 시설 좋은 호텔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여기서 이 지역 산행코스와 주변 거주 경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롯지 이야기를 몇 자 적으면 다음과 같다.

롯지는 히말라야 등산객을 위한 숙소로서 나무 혹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히말라야 산지 등반 코스 전역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소규모 경작지를 주변으로 몇몇 가옥들이 함께 어울려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하루 아니면 한 달 그 이상의 주기로 필요에 따라 이 계단을 직접 오르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얼마나 고달픈 삶인가? 나는 한번 거쳐 가는 길이지만 이들에게 이 길은 생을 같이하는 삶의 필요이자 수단일 텐데…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면 험난한 산지 지형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작지는 주로 계단식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너무 과도한 경작으로 산사면의 자연성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호우 시 대규모 산사태로 인하여 막대한 인사 및 재산 피해가 있다고 한다.

이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니 농지의 부족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한줌의 계단식 농지의 확보는 절박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제 저녁을 잘 먹은 탓인지 아침에 다리의 통증도 어느 정도 나아진 듯 하고 몸도 가볍게 느껴졌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 바로 계곡을 따라 하산하였다.

산행 도중 귤, 바나나 등을 볼 수 있었으며, 노란 유채꽃과 초록색 밀밭이 어우러져 연출해내는 광경이 마치 우리나라 시골의 풍경을 연상하게 했다.

4시간가량을 이동하여 4일전 산행 출발 지점이었던 나야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걷는 길은 없다. 살 것 같았다.

산에서 걸은 거리가 하루에 13~14km씩 치면 총 50km가 넘는 거리였다.

한국 차인 봉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에서 며칠 째 짐을 날랐던 포터들과 그 새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쉬운 헤어짐을 가진 후 곧 바로 차에 올라 포가라 시내로 이동했다.




주민들의 기도 모습 - 산행 출발지 사람들의 기도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조건으로 합석을 요구하던 촌로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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