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경 일찍 잠이 깼다. 난방 없이 춥게 잔 탓인지 전날의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7시부터 곧 바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식회암 층을 뚫고 흘러내리는 울레리 계곡을 따라 정글 지대를 약 3시간가량 헤쳐 올라갔다. “나마스테” 등반 도중 길을 따라 간간이 네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롯지 전경. 첫날밤을 묵은 롯지로 생각보다는 깨끗한 편이나 더운 물은 약간의 돈을 집어줘야 쓸 수 있다.

계단식 경작지 모습. 산사면 곳곳을 경지화하고 있었으며 경지에는 유채, 감자, 밀 등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돌로 지붕을 얻힌 롯지와 계단길. 석회암이 변성된 점판암으로 지붕을 얹힌 돌지붕 롯지와 끝없이 펼쳐진 돌계단의 모습이다.

11시경 티케둥가에 도착하였다. 롯지 처마 밑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고추꽃과 계단식 경작지에 무성하게 피어난 유채꽃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오후 1시를 넘어서야 점심 식사 장소인 울레리에 도착하였다. 2시간 넘게 걸려, 등반 코스 중 가장 어렵다는 약 2천 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온 것이다.

아직도 1천 개의 계단을 더 가야 오늘의 목적지인 고라파니에 도착할 수 있다. 얼마나 힘든 계단길이었는가! 이 힘든 계단길은 네팔 사람들은 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오고 갔을까?

계단에 얽매인 네팔사람들의 피곤하고 힘든 삶이 머릿속에 가득 그려졌다.

내 생애에 이렇게 많은 계단길을 오를 기회가 어디 또 있겠는가! 한탄 섞인 자문을 하는 사이 앞산 너머 구름 사이로 히운출리봉(7,893m)이 눈앞에 나타났다.

히말라야 산봉들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를 반겨준 마차봉이었다. 바로 눈앞 손에 잡힐 듯 다가선 히운출리봉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힘들게 오른 계단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고 또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5시가 넘어서야 반탄티에 도착, 이후 2시간을 더 올라서 7시가 넘어서야 목적지인 고라파니에 도착하였다.

이미 칠흙 같은 어둠이 대지를 삼켜버린 이후였다. 출발 지점과 달리 해발 고도 3,200m를 넘는 지역이었으므로 날씨는 매우 추웠다.

식사 후 온 몸을 싸고도는 피곤함을 잊기 위하여 불편한 시설이었지만 데워주는 물로 샤워를 마친 후 내일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창밖으로 안나푸르나 남봉(7,219m)과 히운출리(7,893m)봉의 잔영이 어둠을 뚫고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내일은…



일출을 보기 위하여 5시에 기상했다. 푼힐 전망대까지는 약 30분, 시간이 촉박하여 바쁜 걸음으로 올라야 했으나 고지대였으므로 고산병의 위험이 뒤따랐다.

호흡을 조절해가며 천천히 새벽의 어둠을 가르며 올랐다. 이미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해뜨기까지는 약 30분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약속한 시간대에 태양은 떠올랐으며 아침 일출의 햇살을 받은 안나푸르나 남봉과 다울라기리(8,167m)의 절경은 나를 숨 막히게 할 정도로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숙연함을 강요했다.

지난해 여름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평원의 풍광이 어머니와 같은 대지의 넉넉함과 포용력으로 나를 감동시켰다면 이번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컫는 히말라야 산맥 일부의 풍광은 아버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용감성과 대담성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다시 한 번 내가 속세의 삶 속에서 그동안 가졌던 욕심과 허영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는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연속 셔터를 눌러대며 30분을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 일출을 구경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흰 눈이 쌓인 겨울산은 춥기 때문에 등반 전문가들도 겨울에는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마차푸차레봉(6,997m). 산의 생김이 고기 비늘과 같이 생겼다하여 명명되었으며 신성시 되는 산으로 입산이 전면 통제되었다.

다울라기리봉(8,167m). 안나푸르나 산군 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로 몇 해 전 한국 등반대가 도전하다가 2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고라파니 마을 학교 전경. 해발 3,200m가 넘는 고지대 사람들을 위한 학교로서 안나푸르나 남봉을 뒤로 한 채 아이들이 농구를 즐기고 있다.

다울라기리를 배경으로 잠시…. 이른 새벽부지런을 떨어가며 올라온 푼힐 전망대에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해보았다.



푼힐 전망대가 위치한 고라파니 마을 전경. 전망대가 위치한 고라파니 마을의 모습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이곳까지 이르는 계단길은 생각 외로 쉽지 않다.

하산 후 식사를 마치고 바로 짐을 꾸려 오늘의 등반을 시작했다. 푼힐 전망대 반대편에 위치한 구릉힐 전망대에 올라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남봉을 다시 한 번 1시간 넘게 감상하였다.

경이적인 대자연이 빗어내는 아름다움에 감사하면서 밀림 지대를 2시간 넘게 통과하여 점심 식사 장소인 데우랄리에 도착하였다.

수제비로 점심을 해결하고 발목 넘게 쌓인 눈길을 2시간 넘게 헤치면서 산을 내려왔다.

2시간가량을 더 오르락내리락하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이동하여 어둠이 깔리기 전에 숙소 바리쉬 꺄이까 롯지에 도착하였다.

이번 저녁에 묵을 숙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의외였다. 일정상 불편을 감수하며 하루를 묵어야 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포터들과 밤하늘의 별을 친구 삼아 약 1시간가량의 대화를 나눈 뒤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하루였음을 되새기며 양초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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