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제물포역에서 동인천 방향으로 가다 배다리 부근을 지날 때면 보이는 가게 ‘신농종묘’. 길가 맨 끝 모퉁이인 까닭에 사각형 터조차 갖출 수 없는 자그마한 곳이지만, 빛바랜 오랜 간판과 변할 줄 모르는 우직함에 동인천을 들어서는 이들에게는 랜드마크처럼 각인돼 있다.

거대한 산업화 물결에 인터넷상의 온라인쇼핑이 붐을 이루는 요즈음 씨앗가게에 눈길을 주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신농종묘는 하루도 문을 닫을 줄 모른다.

“한 분이라도 오셨다가 헛걸음하실까봐 그게 미안해서요. 먼길 일부러 왔는데 문이 닫혀있으면 얼마나 속상해요.”

81년부터 무려 26년째 가게를 지키고 있는 이병환씨(65)는 점심때가 지나도록 손님 한 명 없는 날이 허다하지만 설·추석 이틀을 빼고는 매년 출근(?)을 거른 적이 없단다.

10평도 안되는 내부에는 수많은 채소류 씨앗부터 농기구, 농약류, 간단한 농사용품들이 가득하다.

‘굶어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어라’는 옛 어르신들 말씀처럼 종자확보를 최고로 치던 시절의 화려한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씨앗은 우리 생명을 잇는 근원임을 강변하는 듯하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기가 참 좋았어요. 인천 외곽에 농촌지역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인근 여러 섬지역에서도 새벽부터 찾아왔으니까. 인천은 무가 특히 잘되는 땅이예요. 아마 지금 사람들은 ‘용현무’라고 잘 못들어봤을 겁니다. 남구 용현동 땅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개발품종인데 전국적으로 인기가 대단했지. 씨앗이라고 다 같은 씨앗이 아니예요. 지역·토질·판매회사에 따라 다 다르지. 우리야 무슨 씨앗 하면 좋고 나쁜 걸 단박에 알기에 아무 것이나 가져다 팔지 않아요. 그래도 요즘 사람들이야 어디 그래요. 싸고 많이 주는 곳이면 좋다고 하지.”

장사가 잘 안되는 원인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지만 최고를 팔겠다는 고집만은 꺾기 어려웠다고 털어놓는다.

종묘판매가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원칙적으로 정식 종묘판매허가를 받고 맥을 잇고 있는 곳은 인천에서는 신농종묘를 비롯해 5곳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도 좋은 종자로 이름을 날리던 우리의 씨앗 회사들이 거대자본을 가진 외국계 회사들에 속속 넘어가는 현실을 닮았다.

“가게 문도 곧 닫게 될테니 이제 강하게 마음다잡아야죠. 동인천역과 중앙시장 일대가 개발된다면 이 가게도 더 이상 빌릴 수 없겠죠. 다른 곳으로 옮겨 열기에는 여력이 안되고….” 이씨는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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