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벽두부터 온 나라가 개헌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면서 여야 정치권을 소용돌이속으로 내몰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전방위로 대국민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주에 4부 요인, 여당 당직자와 잇따라 오찬회동을 가진데 이어 출입기자 간담회도 열었다.

열린우리당도 김근태 의장 등 지도부가 나서 개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치력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대통령의 오찬 초대에도 응하지 않고 강경한 입장이다.

대통령 탈당과 거국내각 등을 전제조건으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민주당도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하는 분위기다.

이쯤되면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내기 힘든 상황이다.

국민투표에 붙여지기도 전에 개헌발의는 물건너 갈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다음달에 발의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속내를 놓고 억측이 무성하다. “개헌제안 시기가 정략이다.

낮은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한 정국 흔들기다. 대선에서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략이다” 등등의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 본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략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오히려 개헌을 반대하는 야당의 주장이 정략이라고 맞받아쳤다.

정략 공방이 이어진다. ‘정치목적을 위한 책략’이란 사전적인 의미의 정략에 대한 해명이 대국민 설득작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헌 제안에 대한 순수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거나 말로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싶다. 서로간 불신이 워낙 커 설득한다고 야당의 태도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여론도 그렇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 다수는 개헌에는 찬성하는 쪽이다. 그러나 대선이 있는 연내 개정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개헌발의를 강행하려는 것은 순수성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야당의 주장대로 정쟁을 부추겨 정국의 흐름을 바꿔 놓겠다는 의혹을 쉽게 떨치기 어려운 입장이다.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안이 부결되든 가결되든 헌법의 권한을 착실히 행사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에서 권한행사를 하려는 것을 놓고 정략이 아니라고 해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함께 하는 개헌문제가 거론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잦은 선거에 따른 정치적 비용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평가에 있어서도 4년 연임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에서다.

우리는 그 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 개헌을 했다. 개헌이 장기집권을 기도하거나 반대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이뤄졌다.

그 중에서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얻어 낸 직선제를 토대로 한 개헌은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은 6년 단임제를, 야당인 통일민주당은 4년 중임제안을 내 놓고 협상을 벌인 끝에 5년 단임으로 절충했다.

장기집권의 악령을 떨치지 못했던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젠 정치환경이 엄청나게 변했다.

국민의 여론이 4년 연임제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개헌)시기도 여론에 따라야 한다.

노 대통령은 20년만에 오는 주기를 강조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적 합의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래서 개헌이 필요하다면 차기정권에 맡기자는 분위기다.

차기정권이 들어서고 국회가 새롭게 구성되면 국회에 특위를 만들어 시간을 갖고 원포인트나, 아니면 권력구조까지 바꾸는 대폭 개헌을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입장도 중요하다. 예비 대선주자인 빅3의 지지율이 합해서 70%에 달하는 한나라당이 어물쩍 넘어가선 안된다.

차기정권에 넘기라는 두리뭉실한 입장에서 확실한 표명이 필요하다. 개헌을 당론으로 내세우면서 정확히 언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대선까지 현 지지율을 지키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면 개헌을 지지하는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이제 대통령은 개헌에 대한 화두를 던지면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입장전달을 했다고 생각한다.

개헌발의권을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에 넘겨야 한다. 여야 정치권 모두가 개헌논의에 찬성하는 만큼 차기 국회에서 이 문제가 매듭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헌법을 고치는 것은 정치인 의지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인 국민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