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인간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에는 순간의 쉼도 없이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따지고 보자면 역설적이게도 인간들은 그러한 문제들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옷과 밥과 집을 만들어내는 것에서부터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양육하고 끊임없이 좀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심지어 죽음이라는 사건까지, 인간의 일이라는 것은 모두 문제를 풀고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인간들의 사회적인 삶이라는 것은 이러한 모순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해결해봤자 또 다시 문제는 생기게 마련인 것이니 굳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애쓸 필요가 무엇이냐는 절망적 니힐리즘이 현자의 선택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이 무언가 문제를 느낀다는 것은 살아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하는 또 하나의 삶의 현상인 것이고 보면 절망적 니힐리즘이란 일부 개인이나 집단의 일시적인 감상이거나 충동일 수는 있을지언정 유별난 각성이거나 더욱이 삶의 지혜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개인이거나 집단이거나 간에 삶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곧 삶의 평화로운 지속에 대한 위협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을 막론하고 인간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대동소이하다. 충동적인 감정에 의지하거나 때로는 냉철한 계산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그 모두가 마땅치 않으면 점괘를 구하기도 하고, 이도 저도 방법이 없을 때는 ‘시간에 맡긴다’라는 근사한 변명을 붙여 문제를 방기(放棄)하기도 한다. 아무리 국가의 대사라고 해도 의사결정 과정 속에는 수도 없이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요소가 개입하게 마련이고 바로 얼마 전까지도 많은 나라들이 신탁이나 점괘에 국가의 진로를 의지하기도 했다. 보류 또는 유보라고 부르는 그럴 듯한 정치적인 결정은 대개 문제의 방기와 다를 것이 없다. 현대 국가에 와서 달리 어찌해볼 방법이 없을 때 투표라는 제도를 만들어냈지만 분명한 논리적인 타당성을 갖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자면 신탁을 묻는 행위와 상당히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가 그랬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개인과 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을 동일하게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어느 누구라도 사회적인 생활 속에서 남의 그릇된 결정으로 이유 없이 피해를 당하는 일은 줄어들어야 하고, 세상은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예측 가능하게 돌아가야 한다. 나 개인이라면 내가 어떤 결정을 했고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원인을 제공한 자와 책임을 져야 할 자가 동일할 수밖에 없으니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사회적인 문제는 자칫 아무 책임 없는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고 그러한 피해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따위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위를 종합하고 보면 인간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보편적 합리성과 과학성에 의지하는 것뿐이다. 물론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완전한 것도 아니어서 합리성과 과학성만으로 사회적 동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결국 투표라고 하는 힘의 논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차선의 방법이어야 하고 제한적인 것이어야 한다. 인간의 문제라는 것은 언제나 몇 가지의 선택 문항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제한적인 투표용지는 운명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다수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월미은하레일 문제를 상기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의 기술 수준은 아직 이 정도 사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에조차 이르지 못한 것일까? 무언가 도저히 논리적인 소통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기술적, 논리적 괴리가 발생한 것일까? 순전히 어느 한 쪽의 고집일까? 아니면 양쪽이 모두 고집만 앞세우고 있는 것일까? 당초 시민검증위를 구성할 때부터 검증위의 결론에 양 측이 모두 승복한다는 약정을 정하고 검증위에 사실상의 권한을 부여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그런 합의된 유권(有權)기구의 재구성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 정답이 어느 것이든 우리사회가 이 문제를 조속히 합리적으로 매듭짓지 못한다면 남는 분명한 결론은, 우리 사회는 후진적이고 무능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표류하는 한, 인천시민은 모두 이유 없이 불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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