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 20.작전

‘작전’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작전이 떠오른다. 우선 ‘인천상륙작전’ 같은 군사적 의미의 작전도 있고 축구나 야구처럼 팀 경기의 작전도 생각난다. 또는 남녀 간의 원활한 만남을 위한 작전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작전’에서는 증권시장의 시세조작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보려는 작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주식거래를 주내용으로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주식거래’라는 낯선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증권시장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도 1987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가 있고 2010년에 그 속편이 나왔다. 물론 ‘한탕’을 노린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줄곧 있어왔지만 말이다.

‘주식’을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고 살아온 것이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내 기억에 88년 서울올림픽 전후에 동네 언니가 ‘100만원 투자해서 200만원 벌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경제지에만 실리던 주식시황표가 일반신문에도 실리고, 이제는 깨알 같은 주식시세를 들여다보는 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펀드’ 열풍을 불러왔다. 매일 9시뉴스에선 코스피지수가 1700을 넘었다,1800을 넘었다하더니 드디어 2000이 넘었다며 앵커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주식에 관해서건 펀드에 관해서건 누구라도 한마디쯤은 거둘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흔히 말하는 ‘개미’는 소액투자자를 일컫는 말로 회사원, 주부, 학생, 백수 등 주변의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수많은 개미들이 여전히 주식시장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나서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주식거래’라는 소재로 영화 한편쯤 나와도 무방하리라 본다. 그래서 탄생한 영화가 이호재 각본, 감독의 ‘작전’이다. ‘작전’이 개봉된 것이 2009년 2월이니 2007년의 펀드광풍에 휩쓸렸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쪽박의 경험을 맛본 개미들에겐 낯선 소재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당연히 ‘작전’에서는 쪽박의 경험과 대박의 경험 모두를 아우르고 있다. 주식시장에선 ‘폭등’과 ‘폭락’이 있기 때문이다. 각본을 쓰기위해 2년여를 발품 팔았다는 이호재감독의 ‘작전’에서는 실제 증권가와 금융계의 분위기가 제법 풍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지내던 현수(박용하분)는 대박을 꿈꾸며 있는 돈 다 긁어 주식에 투자하지만 쪽박을 차고 만다. 와신상담하며 몇 년을 ‘주식공부’에 매달린 현수는 드디어 ‘프로개미’가 된다. 드디어 자신의 실력으로 7천만 원을 손에 쥐는데 하필 그 주식은 조폭이 개입된 작전주였다. 그 이유로 조폭 출신 투자전문가 황종구(박희순분)에게 감금당한다. 황종구는 현수에게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며 작전팀을 구성한다.

작전의 총지휘자는 조폭출신 황종구. 그는 DGS캐피탈홀딩스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명함을 갖고 있다. 황종구와 내통하는 ‘설계’ 담당 조민형(김무열분)은 엘리트증권사 직원이다. 유서연(김민정분)은 상류층의 은닉 재산을 관리해주는 PB(프라이빗 뱅커)로 작전에 실탄을 공급한다. 작전의 재료인 껍데기 회사의 대주주 박창주, 외국계 펀드매니저 브라이언 최, 거기에 증권 방송에서 족집게 분석으로 유명한 애널리스트 김승범까지. 잘되면 600억 원을 벌 수 있는 ‘작전’의 주연들이다.

현수는 체육관으로 위장된 곳에서 자는 시간만 빼고 주식차트만 들여다본다. 작전팀이 전해주는 정보와 자금으로 껍데기회사의 주가를 한껏 올린 뒤 한방에 치고 빠질 타임을 고르는 중이다. 그런데 모든 악당들이 그렇지만 ‘돈’만을 노리는 악당도 악당이다. 작전 멤버들간의 또 다른 작전이 시작되며 저마다 현수에게 타이밍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거기다 황종구는 작전이 끝나면 현수를 처치할 궁리까지 한다.

영화의 내용이 이렇다보니 화면이 답답할 만도 한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다.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는 내용

이야 어떻든 화면은 화려하다. 그런데 ‘작전’은 내용이 영화를 끌고 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대박과 쪽박의 긴박함 속에 가벼운 흥분마저 느낀다. 그렇다고 내용만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이호재감독은 이 영화를 찍는데 무려 300,000피트가 넘는 필름을 사용해 평균 한국영화보다 2배나 많은 컷을 찍었다. 또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가능한 세트장보다는 실제 장소에서 찍었다고 한다. 물론 이 영화를 보는데 주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보단 약간의 지식이 있으면 훨씬 실감나게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주식’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기에 상관없다.

‘돈’과 ‘폭력’이 만나 사금융을 운영하는 황종구를 보면 무조건 ‘00캐피탈’이니 ‘00홀딩스’라는 상호는 의심스러울 뿐이다. 또 PB를 이용하는 대한민국 상위1%라는 계층이 사실은 떳떳하지 못한 자금을 가진 자들이란 생각이 들어 씁쓸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정보가 돈인 세상에 증권사 직원이 개입하여 정보를 빼내고, 공정해야 할 애널리스트가 증권방송에 나가 특정회사를 밀어주는 등 어쩌면 그게 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영화는 영화라지만. 그렇다면 결론은 이거다. ‘개미는 개미다’. 주식에 대해 잘 아는 유명한 시골의사 박아무개씨는 개미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영화에서 황종구는 현수의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죽일 것을 지시한다. 주먹들이 현수를 끌고 간 곳은 영종도의 빈 터다. 요즘 한국 영화에서 인천을 캐스팅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인천공항과 송도국제도시는 첨

단의 느낌과 화려함을 필요로 할 때다. 또 하나는 인천항 부두하역소나 인천공항 주변 공터다. 이곳은 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불법적 거래가 이뤄지는 단골장소로 애용된다. ‘작전’에서도 땅을 파고 무식(?)하게 거기 현수를 파묻으려고 한 곳도 영종도 만정낚시터 부근이다. 아직까지 주변에 개발되지 않은 빈 터가 많다는 것이 인천의 장점이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하긴 영종도도 예전의 영종도는 아니다. 과거 인천사람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큰 맘 먹고 하루 일정으로 다녀가는 관광지일 때는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이제는 인천국제공항이라는 건물로 인해 공항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인천대교까지 개통되었다. 영종도는 이제 섬이 아닌 것이다. 영종도는 ‘하늘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점점 하늘도시의 위용이 갖춰지면 삽자루 하나들고 나타나 아무데나 땅을 파는 주먹들은 오지 못할 것이다.

영화 ‘작전’은 신선한 배우들의 발견이기도 하다. 영화의 소재 탓에 배역들이 주로 남자들인데 김민정은 영화의 화사함을 위해 캐스팅된 느낌이다. 특히 세 남자배우가 인상 깊다. 현수 역을 한 박용하는 약간 소심한 듯 하면서 순진한 백수 역에 적역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많은 팬들을 가졌던 그를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와 대조적인 두 인물로 나온 박희순(황종구역)과 김무열(조민형역) 또한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려주었다. 두 배우의 열연은 실제로 각 종 영화제에서 신인연기상 부문 후보로 지명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호재감독 또한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영화제에서 각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면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영화는 약 한달 간 150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소재가 무겁고 어렵다는 선입견 말고도 투자할 돈도 없는 서민들에겐 이런 영화 보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요즘 달러는 약세고 금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더 이상 미국이 세계경제의 안전판 노릇을 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미국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자 세계 각국의 증시는 폭락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증시도 요동치고 있다. 또다시 금융위기와 불황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미래가 불안한 소시민들은 매주 연금복권을 싹쓸이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또 어디선가 제2의 현수가 수퍼개미를 꿈꾸고, 또다른 황종구는 새로운 ‘작전’을 시작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감독은 슬슬 속편을 준비해야 될테고. 권양녀 前 문화사랑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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