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이우재 온고재 소장

구월동의 한 오피스텔에 문을 연 '온고재(溫故齋)'는 논어, 맹자 등 고전을 공부하는 공간이다. 지난 2009년 9월 개원한 온고재는 10평이 채 안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수강을 신청하면 의미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 각박한 현실에서 고전 공부를 통해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강생들이 얼마 되지 않지만 가르치는 강사나 배우는 학생 모두 진지한 열의를 엿볼 수 있다.

온고재를 열어 고전 강의를 하고 있는 이는 이우재(54) 소장. 학생 시절 수학과 물리학을 잘해 제물포고 출신의 최고 수재라는 평을 들었던 그는 제도권과는 인연이 없었다. 서울대 재학시절 운동권에 뛰어들어 1978년 유신반대 투쟁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뒤 1988년에는 인천 5·3사태를 주도해 또다시 구속되기도 했다.

한때 수재 소리를 듣던 그가 젊음을 불태웠던 운동권에서 떠나 2천500년전 인물인 공자, 맹자 타령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는 "나보다 앞서 살다 간 인류의 스승으로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인간의 역사 과정에서 기술과 제도가 무한히 발전했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진정한 나의 삶을 찾고 세상과 나의 바른 관계를 찾기 위해 선인들의 지혜와 고민이 담긴 고전을 통해 평생 공부를 하자는 취지에서 온고재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온고재를 열게 된 이유는.

= 이전에도 운동권 후배들에게 ‘논어’, ‘맹자’를 가르쳤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화가 됐지만 갈 길을 잃

어 버린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됐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빈부 격차, 불평등은 법이나 어떤 제도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돼 버렸다. 이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다.

인간 불평등이나 빈부 격차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 하더라도 해결을 추구해야 할 문제다. 이 문제를 고민했던 선조들의 지혜를 통해 길을 찾자는 의미에서 논어, 맹자를 배우고 가르치게 됐다. 고전은 어렵고 딱딱하지만 친숙해지다 보면 자기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불평등이나 빈부 격차에 대한 고민도 고전에 다 나와 있다. 공자, 맹자는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운 시대에 군주제 상황에서 백성들이 배 불리 먹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해법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선인들이 고전에서 제시했던 원칙은 현 시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공자나 맹자는 물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도 극복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고전을 공부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있을 것 같다.

= 운동권에서 14~15년간 몸 담았다가 93년에 그만뒀다. 당시에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구권이 붕괴되고 민주정부라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 때는 사회주의를 목표로 두고 운동을 했는데, 민주화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거리가 있어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꽤 긴 방황을 했었다. 이 때 발견한 것이 논어였다. 새로운 눈으로 논어를 보게 됐다.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동권 시절 빈부 격차 해결 문제만 고민했는데, 공자나 맹자는 이를 뛰어 넘는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운동을 그만두면서 겪게 됐던 좌절감과 방황을 고전을 통해 초월했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이후 논어와 맹자와 관련한 저술활동과 강의를 하게 됐다. 후배들에게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자는 생각에서 책을 쓰고 가르치게 됐다.

강의는 어떻게 진행되나.

=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저녁에 100분씩 강의한다. 수요일은 쉰다. 월요일에는 오전에 논어를 가르치고 오후에는 ‘사기열전’을 강의한다. 고전 강좌만 진행하면 지루할 수 있어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대학 교수 등 외부 강사를 초빙해 자본론이나 역사, 예술사, 철학 등을 강의하기도 한다.

배우는 사람들은 강의때마다 10명 남짓 오는데 40대 이상 직장인들이 많다. 대부분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지친 이들이다. 고전 공부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인생에 대한 성찰 기회를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나는 논어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한다. 어렸을 적의 공부를 상기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거운 책가방과 시험, 회초리인데, 진정한 의미의 공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자신을 살찌우는 공부를 해야 재미 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다른 사람도 사람 같은 삶을 살게 해 주는 고전 공부야 말로 어느 공부보다 재미 있고 유익할 수 있다. 고전 공부가 깊어지면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진다.

온고재가 추구하는 목표에 비해 너무 비좁은 것 아닌가.

= 과거에 공공도서관에서 고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앞으로도 도서관에서 고전 강의를 요청하면 기꺼이 나

설 생각이다. 내 스스로 평생의 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평생교육기관인 도서관에서조차 취미교실은 많은데 비해 인문학이나 고전 강좌는 많지 않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고전 강의는 도서관뿐 아니라 사회 환원 차원에서 대학에서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는데 찾아 보기 힘들어 무척 아쉽다. 공교육기관인 대학은 취업센터 수준에 그치고 있다. 드물게 대학에 고전학 강의를 개설했더라도 공부를 위한 수단에 그쳐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금은 대학에서 배출한 박사 등 고급 인력이 남아도는 판국인데, 마땅히 갈 곳 없는 고급인력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고전 강의에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고급인력의 실업문제도 해소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일반인들의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어 유익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고전 강의를 할때마다 늘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을 고전을 통해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사료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3년쯤 더 온고재를 운영하다 적당한 시기에 능력 있는 후배가 나타나면 물려줄 생각이다. 10년전에 논어를 썼는데, 개정판이 조만간 나온다. 후배에게 온고재를 물려주면 좀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책을 쓰고 외부 강의에도 나가고 싶다.

일반인이 고전과 친숙해지는 방법이 있다면.

= 화장실 같은 눈에 잘 띄는 곳에 고전책을 놓고 시간을 두고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고전을 어렵게 공부하려면 힘들지만 무심코 읽더라도 어느 순간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올 때가 있다. 어렵게 읽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친숙하게 대하다 보면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해준다. 고전을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평생 공부라 생각하면 재미 있는 공부가 될 수 있다. 틈 나는대로 읽다 보면 사색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준다. 중년이 되면 돈과 욕망에 이끌려 살아온 과거가 허망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고전은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닐 지라도 적어도 위안은 될 수 있다. 인생을 뜻 깊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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