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학교 맛있는 교육] 인명여자고등학교

‘이 몸을 촛불같이 태워 비추리’

인천시 남구 관교동에 위치한 인명여자고등학교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글귀다. 1989년 개교 이래 22년 동안 인명여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수시로 읽고 대하면서 마음을 다잡하게 한 짤막한 문구다. 교

사는 자신을 태워 학생들을 비추고, 학생들은 지식을 널리 이롭게 세상을 비춘다. 짧은 글 속에 담긴 인명의 교육 철학이 돋보인다.

인명여고는 2009년 4월 지역 사립고교 중 유일하게 기숙사를 개관했다. 지난해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정하는 과학중점학교로 선정돼 과학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결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인명여고는 2010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에 5명을 합격시키는 등 학생 91%가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성과를 이뤘다. 2011학년도 수시모집에서도 서울대 2명, 카이스트 1명, 포스텍 1명 등 국내 최상위권 대학 합격생들을 줄줄이 배출시켰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고교들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약진하는 인명여고만의 비결을 들어본다.

▲사립고 유일의 기숙사 ‘송림학사’

운동장 한켠에 자리잡은 기숙사 ‘송림학사’는 개관 2년 만에 인근 학교 및 학생들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인명여고는 2009년 4월 송림학사를 개관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24시간 학교에 머물게 하는 기숙사다. 입시생 대부분이 학교나 학원에서 머물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적지만 통학하는데 상당한 시간

이 소모된다는 점에서 기숙사는 개관 초부터 인기를 끌었다. 개관 초기에 88명이 수용 가능했고, 현재 진행 중인 확장 공사가 끝나면 총 148명의 학생이 선발돼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기숙사에는 숙식이 가능한 침대 및 도서관, 식당은 물론이고 별도의 강의실이 마련돼 학생들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3개 학년에서 선발된 학생들은 송림학사에서 영어·수학 심화학습 및 논술특강, 유명강사와 선배 초청 강연, 맞춤형 진학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학습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주말을 제외하곤 학교와 기숙사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별도의 사교육은 받지 않는다.

방학에도 기숙사는 운영하고 있다. 송림학사 모집요강은 학년별로 차이가 있지만 내신성적과 수능모의고사, 전국연합학력평가를 합산해 적용한다.

송림학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성적도 우수해야 하지만 부모님의 동의도 있어야 한다. 희망학생들은 학부모 연서로 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들 학생들은 무단 외박 및 외출이 2회 발생하면 퇴사조치 할만큼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송림학사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 2010년 송림학사 졸업생들 중 서울대 4명을 포함해 35명이 국내 10위권 내 대학에 진학했고 올해는 30명의 학생들이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다양한 특색 프로그램

인명여고는 지난해 6월 교과부가 지정하는 과학중점학교로 뽑혔다. 과학·수학 교과의 이수 기회를 확대해 과학고에서 흡수하지 못하는 우수한 과학인재를 영입할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과학중점학교의 여러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2011학년도 고교 입시전형에서 인천지역 과학중점학교들은 특별한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그 가운데서도 인명여고는 과학중점학교와 송림학사 운영이 시너지 효과를 내 가장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학중점학교로 이름을 날렸다.

학교는 교과 과목 확대 외에 과학적 잠재력 개발을 위한 과학경시대회나 창의성대회, 탐구대회 등을 실시하는 등 학생들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논술교육을 강화해 수시모집에 대비한 것도 인명여고의 특색으로 꼽힌다.

학교는 정예의 논술 지도교사팀을 꾸려 차별화된 다면사고형 논술지도로 입시에 대비했다. 단계별 특강과 심화수업 등으로 수시모집 논술에 대비한 결과 2010학년도에는 인문계열 57명의 학생이 논술전형에 도전해 이중 절반에 가까운 29명이 합격했고, 자연계열에서도 35명이 도전해 68.5%에 이르는 24명이 논술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성과를 낳았다.

다양한 분야의 학내·외 경시대회를 통해 학생들의 재능을 이끌어내는 것도 인명여고의 자랑이다.

▲교사들과 함께 뛰는 입시준비

송림학사나 과학중점학교 등 인명여고가 우수한 자원적 토대를 쌓을 수 있었던데는 인명여고의 열혈 교사들 덕이 컸다. 학생들이 24시간 학교에 머문다면 교사들도 그만큼 업무량이 많아진다. 특히 고3 담임 교사들의 부담이 크게 마련이다.

3학년부장 강인실 교사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대단하시다”며 “학교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선생

님들께서 학생들을 제자식 돌보듯 대하신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 대부분의 고교가 학교마다 차별화된 입시전략과 진학지도를 한다지만 주목받을 만한 성과를 내는 일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인명여고의 진학 성과는 다른 학교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현관식 교사가 개발한 맞춤형 진학지도 프로그램으로 1학년 학생부터 3학년 입시생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진학지도가 이뤄지고 있다. 1학년 때는 교과 외 활동을 통해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하고 3학년이 되면 그간 학내·외 활동을 포트폴리오 삼아 학생 개별에 맞는 진학지도가 이뤄지게 된다. 공교육의 틀에서 학생들이 적성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모든 토대를 교사들이 쌓아주고 있는 것이다. 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교사 노트' 교안은 수업의 기본 인천 학력 낮게 평가 안타까워
[인터뷰] 안상수 교장

인명여고 안상수 교장은 교사들을 공부시키는 교장으로 유명하다. 안 교장은 지금도 인명여고 교사들의 ‘교안’을 일주일에 한번씩 직접 검사하고 손수 평가를 적어준다.

여러가지 참고서들을 교사들이 수업 전에 미리 챙겨보고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별도의 노트에 작성한 교안은 과거 교단에 선 교사들에게는 필수였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됐다.

안 교장은 “아마 아직까지 교안을 적는 학교는 우리학교가 유일할 것”이라며 “선생님들만의 노트, 교안은

수업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교사들이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는 불만섞인 하소연을 해보지만 안 교장은 한번도 교안 검사를 그만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안 교장이 교안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학생이 따라오려면 교사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기본 중에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다. 교육의 근본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고, 학생에게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것이 본분임을 잊지 말라는 선배 교사의 충고이기도 하다.

그는 “교수들은 전공과목을 교과서로 만들어서 팔기도 하는데, 교사들이 한학기 두권 교안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며 “교안을 작성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이는 선생님들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55년 교직에 몸담고 있는 안 교장은 스스로 “열심히 가르쳤다”고 과거를 추억했다. 황해도 출신인 안 교장이 스무살, 김일성대 공과대학 화학과에 다닐 때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에 참전하면서 가난해도 자식은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첫발령지는 1955년 강원도 삼척공고였다. 교단에 서면서 안 교장은 일기장 첫장에 ‘이 몸을 촛불같이 태워 비추리’라고 썼다. 현재 인명여고 현관에 적힌 그 글귀다.

그가 인명여고를 설립한 것은 1988년이었다. 1973년 서울 광성고 교장으로 부임한 그에게 당시 인천시교육감이 찾아와 인천에 사학을 설립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고 한다. 몇차례 고사 끝에 개교를 결심했고 그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안 교장은 “사학이 전국 각지에 생겨나게 된 데는 안창호 선생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며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교육의 기본 정신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장의 표현에 따르면 1987년 인천에 처음 와보니 인구 70만명의 인천은 황무지였다. 시교육청과 시청만이 덩그러니 들어서있었다.

지금 관교동은 백화점, 예술회관, 지하철 등이 들어서면서 인천지역에서 가장 교통 및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가 됐다. 그러면서 인명여고의 위치도 점점 확고해지고 있다.

긴 세월을 지켜본 안 교장은 인천의 학력을 낮게 평가하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학생들의 기본 실력을 놓고 보면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데, 많은 수의 학생들을 평균내다보니 인천 학력이 뒤떨어진 것 처럼 보인다”며 “선생님들이 잘 가르치면 된다는 기본만 잃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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