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유필우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장

지난 10일 제10대 인천시 사회복지협의회장으로 유필우(65) 회장이 재추대됐다. 그는 오는 2013년까지 협의회장을 맡는다.

그에게 협의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2002년 7대 회장에 취임한 후 공사사장, 국회의원 등 많은 직함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가장 먼저 챙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사회복지와 협의회다.

“사회복지와 협의회 일은 무척 보람이 큽니다. 회장이라는 직책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진실된 마음으로 건실하게 움직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에게 협의회장은 운명적 직책이다. 그는 1988년 북구청장 시절 우연히 한 정신장애 시설을 찾았다. 그 곳

에서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 시설에서 헌신 봉사하는 사회복지사들을 보고 그는 감동을 받았다. 이후 복지시설을 적극 지원하고 찾아 다녔다.

국회의원이 되자 그는 상임위원회로 보건복지위를 선택했다. 당시 국회의원들에게 보건복지위는 비인기 상임위였다. 그는 주저 없이 선택했고, 국고를 끌어들이려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협의회를 맡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도와주는 ‘복지누리 시스템’과 인천대에 사회복지학 전공학부 신설을 잊지 못한다.

이번이 네번째 회장을 맡아 부담이 컸지만 그동안 했던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에 회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효율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추진해 효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인천시와 민간이 참여하는 사회복지재단 설립을 계획 중이다. 사회복지기관만 2천여개, 종사자만 1만여명에 달해 효과적인 정책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그는 말 없이 묵묵히 봉사하는 알려지지 않은 참사람을 발굴해 소개하는 한편 이들을 격려를 할 수 있는 사업들도 구상중이다.

그의 머리 속에는 자원봉사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봉사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부 중이다.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지역에 확산시키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그는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 대표를 맡았다. 이 회사의 주된 사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연세대 송도 캠퍼스와 주변을 개발하는 일이다.

그에게 송도국제도시는 낯설지 않다. 처음 이 지역의 개발 목표였던 미디어밸리에 관심을 가졌고, 인천대교 건설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회사 창문으로 송도국제도시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허허벌판인 이 곳을 발전시키려고 많은 이들이 노력을 했고, 인천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모교인 연세대와 지역 발전을 위해 이 회사에 왔다. 그는 회사 현황을 파악하면서 인천경제자유구역 사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그는 부동산 투기는 ‘만국병’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유학 당시 집값 상승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연구했다. 청와대 근무 때도 부동산 투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 마련 등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그는 오랜 기간 집이 없었다. 23차례나 이사를 다녔다. 그래서 누구보다 집없는 설움을 잘 안다. 물론 직장이전이 이유였지만 이삿짐을 옮기고 풀 때마다 주택문제는 늘 화두 중의 하나였다. 그는 언제나 집없는 사람들이 정주할 수 있는 오아시스를 만들어 주어 싶어했다. 아마 그의 경험이 이런 생각을 하게된 배경이 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무척 싫어합니다. 막을 방법을 찾으려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이 인천경제자유구역에 적용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인천 발전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그는 중국 광서성 한도시의 고문이다. 중국 정부가 이 도시를 중국 서부 개발의 전초기지화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자원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이 이 도시에 항구를 만들어 원유, 철 등을 들여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을 갈 때마다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에 놀란다. 중국 특유의 만만디도 사라져 밤새 일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예전의 중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인천인이다. 초·중·고교를 인천에서 나왔다. 누구보다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그러나 요즘 그는 진정 인천을 가슴으로 느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있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인천을 걱정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특히 그는 인천시 부시장, 국회의원 때 가슴으로 인천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고, 제대로 지역에 기여를 했는지 자책을 한다.

“지난 18대 총선 운동을 하면서 명함을 돌렸습니다. 한사람이 명함을 찢어 내 얼굴에 던졌습니다. 이 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인천과 시민들에게 무엇인지. 말로만 인천사람이라고 주장했는지.”

그는 정치인들에게 쓴 소리를 했다. 인천을 위해 시간을 내지 않고, 시민들을 알지 못하면 인천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지역사랑 실천의 한 일환으로 대표로 있는 회사에 지역 관련 부서를 내년에 신설할 계획이다. 인천에 기반을 두고 혜택을 받는 기업이 지역 사회 기여는 당연하다고 그는 말했다. 송림동 출신인 그는 인천의 체취가 묻어있는 구도심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계획과 목표도 세웠다.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내 중심으로 살아온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주변에서 도와줘도 당연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딸이 어느 고교를 나왔는지 잘 몰랐습니다. 가족보다는 제 직장에 맞춰 이사를 자주 했습니다. 그동안 아내와 자식들을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픕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그를 기억한다. 계속 정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정치적 고민은 하고 있고, 관심은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는 지역의 젊은층과 자주 만나려고 노력한다. 지역의 젊은이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그들의 생각을 엿보고, 인천에 대한 사랑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또 새로운 수단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도 할 계획이다.

그는 “인천의 정체성, 애정을 만드는 일은 계속하겠다”며 “과정을 제대로 한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력: ▲송림초(1957년) ▲인천중학교(1960년) ▲제물포고등학교(1963년) ▲연세대 경영학과(1967년)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과정 수료 ▲미국 데이튼 오하이오대 경영대학원 MBA과정 1년 수학

경력: ▲1970년 해군 중위 전역 ▲1971년 한국상업은행 입행 ▲1974년 제1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82∼84년 부산시 주택과장 ▲1985∼87년 인천시 산업, 지역경제국장 ▲1988년 인천시 북구청장 ▲1988∼92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국장 ▲1994∼95년 노동부 노동연수원장 ▲1998∼2000년 인천시 정무부시장, 도시계획위원장 ▲2002∼2003년 대한석탄공사 사장 ▲2000∼2003년 새천년민주당 인천남구 갑 지구당 위원장 ▲2004∼2008년 17대 국회의원

현직: ▲2002∼ 인천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2008∼ 민주당 인천 남구갑 지역위원회 위원장 ▲2010∼송도국제화 복합단지개발㈜ 대표

상훈: ▲상공부장관 표창(1976년) ▲국무총리 표창(1982년) ▲녹조근정훈장(1992년)

저서: ▲나는 지금도 비가 오면 잠을 잘 수 없다(2002년) ▲서민집을 지켜라(2010년)

대담=이원구기자 jjlwk@i-today.co.kr 정리=이현구기자 h1565@i-today.co.kr 사진=황경진기자 sky0312@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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