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뿌리 될 검은 머리는 없지만 남은 생이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일흔이 넘은 두 쌍의 예비부부가 오는 2일 연수구 사할린동포복지관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다.

백용하(71) 할아버지와 최화자(68) 할머니, 오종학(70) 할아버지와 김영자(71)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2일 결혼식을 앞두고 함께한 두 쌍의 예비 노부부. 왼쪽부터 오종학·김영자씨와 최화자·백용하씨

이들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을 당한 후 터를 잡고 60여년을 넘게 살았다.

그리운 고향땅에 대한 꿈을 안고 지난해 영주귀국을 한 후 지금까지 연수구 사할린동포복지관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서로에게 끌려 함께 살길 원하는 이들에게 사할린동포복지관 김주자(52) 관장은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부부로 인정할 수 있도록 결혼식을 제안했으며 이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연애 하는 동안 러시아와 다른 한국의 문화에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할린에선 한 쪽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면 또 결혼을 해 다른 사람과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지만 한국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사랑 표현이 서슴없는 이들이 데이트를 하거나 상가를 갈 때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면 주위 사람들은 이상하게 본다고 한다.

김영자 할머니는 “고향에 돌아와 이렇게 멋진 사람을 만났으니 이제 남은 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며 얼굴을 붉혔다.

백용하 할아버지는 “이렇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겨 마음이 설렌다”며 “둘이 따로 나가 살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결혼식까지 해주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와 사할린동포복지관은 두 예비부부가 결혼 후 부평구 삼산동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에 각각 새 둥지를 마련해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선 임규현(88) 할아버지와 김경희(88) 할머니의 미수연은 물론, 복지관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꽃병과 음식 등을 파는 ‘사랑의 바자회’도 함께 열려 모처럼 복지관은 잔치 분위기에 휩싸일 듯하다.
조자영기자 idjycho@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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