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추천산] 전라북도 고창 선운산

미당 서정주(1915~2000)만큼 우리 현대시단에서 애증이 교차된 시인은 없다. 토속적, 불교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국어를 천부적으로 활용하여 탐미적인 경향의 시를 다수 발표한, 한국인의 정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일제의 탄압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고통이 고조되던 1941년 발표한 첫 시집 ‘화사집’에서 인간의 악마적인 관능의 세계를 파고들어 ‘한국의 보들레르’라는 별칭을 얻었다. 생명파라 불리던 초기 경향에서 1975년 마지막으로 펴낸 여섯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의 신라정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세계를 보여 준 미당은 그야말로 민족시인으로 우뚝 설 만하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의 기본적인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행보를 보여 아름다운 시에 반비례하는 비난과

비판을 받았다. 일제말기 시 4편을 비롯하여 총 10편의 친일문학 작품을 발표한 그는 독립을 희구하며 일제와 싸우는 동족을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매도하고 청년들에게 천황폐하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라고 촉구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정치적 배경으로 한 이승만을 적극 지지하였고, 동국대 교수이던 4·19혁명 당시 학생들이 희생되고 교수들이 나설 때 침묵으로 일관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서 싸우던 민중문학 진영을 제압하기 위하여 1986년 ‘문학정신’을 만들어 사상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1년 전두환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텔레비전 연설을 했고 198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으로서 ‘4·13 호헌조치’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칭송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반민족, 반민주적 행태로 일관했다.

그런 그는 끝까지 반성이나 사과가 없었고 오히려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년은 갈 줄 알았다”라고 하여 민족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하기도 했다. 정부는 2000년 그의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친일청산논쟁이 이토록 지긋지긋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당은 전북 고창 선운산의 정기를 그대로 받은 선운리 질마재에서 태어났다. 미당의 행적과는 달리 선운산(336m)은 그리 높지 않지만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암봉들과 서해 낙조가 절경을 이루어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일단 능선에 오르면 산행길 내내 선운사를 중심으로 야트막한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하여 양지를 향한 미당의 인생굴곡을 닮은 듯하지만 등산객들에게는 더없는 묘미를 준다. 선운산은 원래 도솔산으로 불렸다. 도솔산은 욕계(欲界)에 속한 여섯 하늘 중 미륵보살이 사는 네 번째 도솔천에 이르는 산이다. 산 입구 선운사로 인하여 일반인들이 선운산이라 하고 전북도도 1979년 ‘선운산도립공원’을 지정하였다.

선운산 등산은 대체로 암봉의 절경을 편안하게 즐기며 산줄기들이 선운사를 편안하게 감싸는 지형을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다. 산행은 입장료(문화재구역이라고 2천500원을 받는다)를 내고 일주문을 통과하여 약 40분정도 평평한 차도 또는 옆의 산행길을 가다 버스를 돌리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인근에서 천연기념물 장사송(長沙松)과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수도했다는 진흥굴을 보고 와서 왼쪽 숲속으로 진입하면 도솔계곡이다. 여기서부터 1.5Km 정도는 안내표지판이 없다. 1.2Km 평탄한 길을 걷다가 우측으로 약 20분 정도 올라 능선길을 만나면 우측으로 진행하고, 5분정도 가면 청룡산(314m)이다. 청룡산부터는 표지판이 정비되어 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길을 즐길 수 있다. 청룡산⇒배맨바위(10분)⇒병풍바위(40분)⇒낙조대, 천마봉(5분)⇒용문굴(15분)⇒개이빨산(견치봉, 30분)⇒도솔봉(수리봉,80분)⇒마이재(20분)⇒석상암(20분)⇒선운사(10분). 선운사 기점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 원점 회귀하는데 약 6시간 잡으면 충분하다. 산행의 키 포인트는 낙조대와 천마봉이다. 천마봉은 수십미터 절벽위에 우뚝 서있는데 건너편에서 보면 아찔하지만 봉우리 자체에서 보는 전망은 기기 막힌다. 바로 옆 낙조대는 서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이지만 귀가를 서둘러야 하는 인천산꾼들에게는 부담스럽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일찍 하산하여 선운사와 대웅보전 뒤 동백숲을 보는 것이 좋다.

선운사(禪雲寺) 창건은 신라 진흥왕설과 검단선사설이 있는데 후자가 정설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연못에 살던 용을 쫓아 내고 돌과 숯으로 못을 메워 절을 세우고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선운사라 지었다고 한다. 성보 박물관, 동백나무 숲 그리고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사찰이다. 산행 뒤 허기는 공원입구 풍천장어집들에서 채운다. 풍천은 지명이 아니다. 강과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어족이 풍부하다는 보통명사다. 고창에는 인천강에서 장어가 풍부하고 이 곳 장어를 주로 풍천장어라 한다. 복분자주나 뽕주를 곁들여 먹는 장어맛이 확실히 다르다.

선운산 주위에는 사자바위, 투구바위, 형제바위 등 각종 신비스런 암봉들이 즐비하여 예사롭지 않은 곳임은 분명하여 풍수지리 답사객들의 필수코스다. 호남 8대명혈인 선인취와형(仙人醉臥形) 혈자리가 있어 하서 김인후(1510~1560)의 후손인 인촌 김성수 일가의 번성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최임식 (LH산악회) hankyy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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