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서구 경서동 청라경제자유구역에도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하늘빛만큼이나 농익은 청라의 가을은 곱다 못해 서럽다.
부드러운 바람결이 얹힌 물억새와 갈대의 몸짓 속에 들어가 한가로이 산책을 하노라면 세상이 온통 내 것인 듯하다. 시원한 가을빛이 전해주는 풍요로움에 포만감을 느낀다.
내년 봄의 환생을 꿈꾸며 숨죽인 하천식물 매자기에 살포시 내려앉아 가을볕을 즐기는 꼬마잠자리 수컷의 여유로움은 도시생활에 지친 이의 마음을 달래준다.
심곡천 물위에서 휴식의 달콤함에 빠진 가창오리는 이방인의 모습이 못 마땅한 듯 저만치 꽁무니를 빼며 날아가 버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되돌아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순간 이방인 가슴에는 미안함이 얹힌다. 비상을 위한 날개 짓은 창공에서의 비행보다 수백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매립 후 15년 세월 넘게 처녀의 땅으로 남아 있는 청라에 자연이 준 선물 앞에서 인간의 만용을 부린 것은 아닐까. 가창오리 떼의 보기 드문 광경을 가까이 지켜보려 했던 어리석음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게 청라의 가을을 맛보면서 느긋한 발걸음을 뗀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몇 해 지나면 못 볼 수도 있는 청라의 가을에 너무 흠뻑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닌가? 되레 서글픔이 밀려왔다.
청라경제자유구역을 포함한 동아매립지 1천126만여 평은 1970년대 후반 중동의 경기침체에 따라 놀던 건설장비의 활용 책으로 등장했다. 중동서 놀리던 건설장비를 무관세로 국내에 들여온 뒤 서구 원창·경서·연희 갯벌을 막아 농토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매립 목적은 1991년 준공하기 전에 한참 벗어나기 시작했다. 1988년 전체 매립면적의 55.7%인 627만7천 평을 수도권매립지 조성 터로 환경처에 넘겨야만 했다. 농토조성이 아니라 수도권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묻기 위해서였다. 세계 최대 규모인 수도권매립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여기에 5만5천 평은 한국전력의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2만2천 평은 인천공촌하수처리장 등으로 땅이 쪼개지면서 용도를 달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청라경제자유구역 538만 평이다. 이 땅은 현재 철새들의 천국, 생태의 보고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생명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듯하다. 한국토지공사와 인천시 등이 이곳에 국제업무타운과 테마형 레저·스포츠단지,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을 조성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얼마 안 있으면 청라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희귀조류 등 생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사라질 처지다.
개발주체들이 보여줬던 지금까지 행태대로라면 청라경제자유구역에서 흑두루미와 금개구리 같은 보호종을 볼 수 없는 것은 시간 문제다.
토공은 개발이 진행될 경우 겨울철새들이 새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대체서식지를 청라 인근 준설토 투기장에 마련하겠다고 대안을 내놨다.
준설토 투기장의 주인인 해양수산부는 콧방귀부터 낀다. 내 땅에 마련하지 못하는 대체서식지를 말도 없이 왜 남의 터에 조성하느냐며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다.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지 말라’는 투다.
환경단체는 그들대로 보호생물을 축소해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했으니 서로 인정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맡겨 다시 만들자며 법적소송도 벌일 태세다.
가을볕에 젖어 청라경제자유구역을 둘러본 뒤 되돌리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펄로 매립돼 소금기가 허옇게 묻어나는 땅 위에 배에 구멍이 뚫린 채 숨져 있던 오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텅 빈 속을 드러내며 이리저리 나뒹구는 고동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개발바람을 탄 청라경제자유구역의 내일 모습이 아닐까하는 걱정에서 였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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