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김인학 파라다이스호텔인천 사장

27일 인천시 중구 항동1가 파라다이스호텔에서 만난 김인학(61)사장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척 많은 모양이었다. 그동안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속 얘기들을 털어 내고픈 기색이었다. 부산 해양대학교 기관과를 나온 그의 이력 밑바닥에 깔려있는 ‘뱃사람’의 기질이 대화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누구 눈치 볼 것 없었다. 예쁜 말로 치장할 필요도 없었다. 그간 아껴왔던 말들을 실타래 풀 듯 풀어놨다.

“인터뷰 하고나서 (광고하라는 등) 아쉬운 소리하는 거 아니야?” 농기(弄氣)가 섞인 그의 말을 뱉어 놓고도 그는 살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파라다이스호텔 인천의 사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경쟁업종인 ‘하버파크호텔’이 지난해 떡하니 문을 열었으니 ‘죽을 맛’이라는 표현이 영 틀린 얘기는 아닐 게다.

요즘 힘드시다면서요, 파라다이스호텔 인천만 그런가요, 아니면 인천 관광업계 전반의 문제인가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난해 인천세계도시축전을 앞두고 호텔 4개가 새로 생겼어요. 공급물량을 채울 정도로 인천을 찾는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고, 두서너개 호텔이 나누어 먹던 같은 크기의 ‘파이’에 숟가락을 들이대는 호텔이 예닐곱으로 늘어났는데 힘들지 않겠어요? 비단 파라다이스만이 아니라 인천의 모든 호텔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의 쓴 소리에 가시랭이가 돋았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과 면담 때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때 그는 계속된 호텔 건립 이후에 나타날 악영향을 설명했다. ‘호텔을 보고 찾는 관광객은 세상천지에 없다. 호텔을 짓기 전에 관광객들이 찾을 수밖에 없을 매력물, 관광 인프라를 먼저 만들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더 많은 파이를 챙기려는 업자의 ‘이설(利說)’쯤으로 묻혀버렸다.

인천의 관광 인프라 수준은 대체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는 인천을 스스로 국제도시라고 합니다. 외국의 국제도시와 비교할 생각도 없습니다. 국내에서조차 인천의 관광 인프라는 중하위권 수준이라고 평가합니다.”

김 사장은 그 원인을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전통의 답습 탓으로 돌렸다. 인천은 제조업으로 먹고 살던 도시었다. 제조업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일하면서도 놀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도시의 균형 발전이 멀어지고 갈등 구조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항만을 예로 들었다. 인천경제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다는 항만은 여전히 일하는 곳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보고 즐기는 공간이 되어야 할 항만이 관련 업체나 종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항만 주변 사람들은 부두에서 날아오는 먼지와 소음에 주민들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항만 업계는 주변 민원에 시치미를 뚝 떼면서 골이 깊어졌다는 생각이다.

친수공간포럼에도 관여하는 걸로 아는데, 인천항, 특히 내항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믿습니까?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부산 해운대 옆 요트경기장 개발을 추진하는 업체가 ‘사업에 참여해 달라’고 찾아 왔더라구요. 아니 요트장 개발을 하는데 ‘왜 나를 찾아왔습니까?’물었더니 웃더라고요. 그 개발업체 말이 ‘요트장이 있으면 먹고 자고, 놀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달랑 요트장 하나만 갖고 못 먹고 사는 세상이라는 것은 다 아시잖습니까’라고 하더라구요.”

내항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잡탕밥’이라는 말을 썼다. 하나의 콘텐츠를 갖고 내항을 꾸민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생태관광측면에서 내항이 새만금을 이길 수 있느냐고 말했다.

내항에 생각하고 있는 콘텐츠는 있습니까?

“콘텐츠를 말하기 전에 개발 방향인 컨셉트 먼저 말을 해야 옳은 순서 같습니다. 내항은 역사 그 자체입니다. 구한말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그걸 개발의 큰 그림으로 잡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찾는 겁니다. 아니, 구태여 애를 쓰며(콘텐츠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예전에 있던 역사적 사실로 채워 나가면 됩니다.”

그는 내항 주변이 과거 조계지이었던 점에 주목한다. 구한말 중국, 일본, 영국, 독일 등지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던 곳이 바로 내항 주변의 중구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의 박물관을 짓고, 그 때의 상황을 재현해 보자는 것이다. 옛 것만 있으면 단조로울 수 있으니 새로운 기념물들도 소재 거리로 삼자고 그는 말한다.

그전에도 논의가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왜 치욕의 역사를 새삼스럽게 들춰내 기념물로 세워야 하느냐며 반대가 심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아니, 치욕의 역사는 역사가 아닙니까? 러시아인들이 러·일전쟁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전쟁에서 러시아 군대는 일본군한테 처참히 깨졌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러시아인들이 ‘창피한 일이니 말도 꺼내지도 말라’고 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성전(聖戰)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로 러시아에 가면 러·일전쟁 기념물을 둘러봅니다.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자랑스러워 찾습니까? 이 역시 아닙니다. 일본일들이 기념물을 찾는 이유는 조상들의 발자취를 보고 싶어서 입니다. 호주는 원주민을 말살한 마지막 날을 문화행사로 승화해, 원주민 복장을 하고 한바탕 놀이마당을 펼칩니다. 사람들은 그런 걸 보러 왔다가 자고 먹고 합니다. 문화를 바탕으로 관광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는 법입니다.”

국제여객터미널의 남항 이전을 둘러싸고 중구 구민들은 지역경제의 몰락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국제여객터미널 이전에 대한 생각은?

“줄 건 주고 얻을 건 얻자는 겁니다. 어차피 인천내항은 5만톤급 이상의 선박이 드나들기 힘든 항만입니다. 갑문 때문입니다. 만약 내항에 국제여객터미널을 그대로 둘 경우 대형 크루즈선이 자유롭게 들고 날수 없잖습니까? 차라리 국제여객터미널이 남항으로 빠져나가게 내버려 두고, 그 자리인 1부두의 활용방안을 찾아야죠.”

김 사장은 1부두의 활용방안으로 아쿠아리움을 짚었다. 1부두를 가로지르는 물막이를 했을 경우 별다른 시설을 가미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수중 아쿠아리움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항 1, 8부두의 활용방안에 대하서도 그는 할 말이 많다. 어느 한쪽에서는 전면 공원화를, 또 한쪽에서는 수익성 있는 주상복합 건물을, 서로 갈려 고집을 부리는 자체가 마뜩치 않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만나 서로 치열하게 토론을 해보았느냐는 것이다. 각자 이해관계에 얽혀 남의 얘기를 듣고자 하지 않는 폐쇄성이 화를 부르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거단지가 몰려있는 1부두 쪽에는 공원을, 또 인천역으로 접근성이 좋은 8부두에는 상업시설을 고려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내항 재개발뿐만 아니라 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지구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파라다이호텔 인천사장으로서 한 역할이 있는가?

“기관이나 민간투자자들은 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지구와 연계한 내항 재개발에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인천역 주변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해 코레일 측도 접촉했다. 내항개발이 터졌을 때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그만한 입지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대만과 싱가포르 투자자도 접촉했다. 그들의 하나같이 하는 얘기는 ‘충분히 승산 있는 개발사업’이라는 것이었다.”

외국투자자는 지금도 인천역 주변 도시개발사업과 연계한 내항개발의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수도권 시민들이 전철을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 재개발된 내항의 시설들을 둘러보고 차이나타운 등지에서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는 밑그림이 그려진다면 외국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투자자들도 줄을 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다만 그는 내항과 경쟁적 관계를 갖고 갈 수 밖에 없는 새만금이나 광양 등지와 차별성 있는 콘텐츠를 전제한다. 그것은 바로 역사성 있는 문화라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파라다이스 호텔에 묵은 일본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인천의 관광인프라 중 가장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 무엇이냐’이었다. 답은 의외였다. 하늘을 찌를 듯 한 빌딩들이 즐비한 송도국제도시와 모노레일이었다. 일본의 웬만한 도시라면 높은 빌딩이 있고, 출퇴근용으로 모노레일을 이용하는데 홀릴게 뭐가 있느냐는 투였다.

김인학 사장은 이제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심사다. 지역 주민들과 서로 논의하고 소통해 지역발전을 위한 대안들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인천에 뿌리를 두고 일하는 업체의 사장으로 할 일. 그것이다. 대담=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정리=유승희기자 ysh8772@i-today.co.kr 사진=황경진 인턴기자 ssky0312@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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