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김종태 인천항만공사 사장

인천항만공사(IPA) 김종태(64) 사장은 우연 같은 필연으로 수십 년 째 바닷가를 맴돌고 있다.

태어난 곳이 양산이오, 사춘기를 보낸 곳이 인천인 그의 성장 배경을 볼 때 어찌 보면 바닷가에 머무는 삶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도 없게 됐다는 그.

자신에게 꿈을 갖게 해준 인천으로 다시 돌아와 인천항을 책임지게 된 그는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수십 년 동안 고집스레 바다를 지키고 있는 그를 ‘인천인’으로 만나봤다.

양산 출생으로 인천은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인천은 어떤 곳인가.

=인천에서 인천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 등을 거치며 사춘기를 보냈다. 세상에 대해 꿈을 갖고 도전하려는 자세를 갖던 시기다. 그 꿈을 위해 대학입시 공부에 매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좋은 추억도 많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전여행을 간다거나 도보로 전국일주를 다니기도 했다. 그때 우리나라가 참 넓기도 하다고 느끼며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각오도 다졌다. 그래서 공직생활을 하게 된 것 같다. 오늘의 내가 있었던 것은 바로 인천에서 얻은 경험 덕택이다.

행정고시 합격 후, 해양업무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유가 따로 있었나.

=고시 합격하자마자 항만청이 신설됐고 20여명의 고시 출신자들이 배치됐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새롭고 전문적인 업무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끌렸다. 하지만 업무는 그리 쉽지 않았다. 다른 고시 출신들이 내로라하는 정부부처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하면 말단 ‘청’ 업무는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고시 출신 20명 가운데 나를 포함해 10명만이 항만청에 남게 됐다. 나는 양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다. 해양 업무가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하려했다.

사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터라 업무가 낯선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해양 업무로 공직생활을 끝까지 하자는 생각은 버릴 수 없었다.

결국 이런 생각은 조직에 대한 애착이 커지면서 위상을 높이겠다는 노력으로 이어지게 됐다. 해양부 신설을 위해 많이 활동했다.

바다 업무는 전문 부처가 맡아야 한다며 힘을 보태달라고 여기저기 알렸다. 나를 비롯해 당시 젊은 과장들의 노력은 해양부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게 됐다.

헌신적으로 활동할 만큼 업무의 매력은 무엇인가.

=바다는 그야말로 넓다. 쉽게 말해 영역이 넓은 만큼 해야 할 일도 많다는 뜻이다.

해운 업무는 남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는 기피 부서였다. 이런 부서에서 항이나 바다에 대해서 다시 배우게 됐다. 나는 바다에서 떠날래야 떠날 수 없구나 하고 느꼈다.

그래서 공직 생활 후에는 해운업에 도전하게 됐다. 시야가 넓어야 하고 보험, 금융, 선원, 외국항, 무역 등 모든 것을 총 망라해야 하는 분야다. 그래서 가장 전문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해운 항만 엘리트를 키우는데 소홀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해운항만 업무에 왠지 가슴이 설렌다.

인천에 처음 돌아왔을 때 소감은 어땠나.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대학 졸업 후 공직 생활을 하면서 인천을 떠나 20여년 만에 다시 찾아오게 됐지만 인천항은 변한 것이 별로 없었다. 인천이란 도시가 급속한 발전을 이뤘지만 인천항은 정체된 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는 뜻이다.

부산항, 광양항과 비교해 인천항은 수도권 규제 등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이 멈춘 것이다.

이런 인천항을 봤을 때 내 마지막 역량을 쏟아 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해운 항만에서 IT까지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인천항을 위해 활용할 생각이다. 인천항도 IT가 선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IPA 사장으로 인천 출신으로 인천항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는가.

=인천항은 오랜 세월 동안 경쟁력이 있는 항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냉전시대 그리고 중국과 교류가 단

절된 시대를 거친 우리나라에 있어 인천항은 그저 변방에 불과했다. 원조물자나 수입물자를 반입해 오는 하나의 창구일 뿐 국제항으로 그 경쟁력은 고려대상 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개방과 동시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세계적인 공장들이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중국과 인접해 있는 인천항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숨겨진 항만이었던 인천항은 인천신항 개발 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원양항로가 개설되면 인천항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제2대 IPA 사장을 맡고 있다. 조직의 수장으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IPA는 올해 창립 5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인천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확실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IPA역시 정체됐던 항만 인프라를 구축하며 공항공사의 위상을 쫓아가야 할 것이다. IPA는 지역에서 유일한 중앙정부 설립 공사로 그만큼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

IPA는 인천항과 더불어 지역을 포함한 수도권 산업단지들과의 연계도 고민해야 한다. 인천항이 국제적인 물류항으로 인정받게 되면 지역 경제는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IPA의 위상은 곧 인천항의 위상을 말해준다고 본다. 인천 항만경제계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교량이 되겠다.

인천항 발전을 위한 주력사업은.

=인천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시민들이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인천항은 현재 대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이 진행 중이다. 당초 개발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인천항은 도약 발판을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변방의 항이 아닌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거듭나기 위해 남항 국제여객터미널, 인천신항, 내항재개발 등은 성공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임기 내에 국제여객터미널 사업 추진은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하반기부터 사업 추진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IPA사장 임기 이후 활동 계획이 있다면.

=아직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만 해도 너무나 즐겁다. 하지만 확실한건 바다를 떠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평생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며 생활해 왔다. 그저 이 길이 내 숙명인 것 같다. 글=이은경기자 lotto@i-today.co.kr 사진=안영우기자 dhsibo@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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