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석때면 고향을 찾는 인파로 ‘민족 대이동’이란 거창한 표현이 등장한다.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고향을 찾아 부모를 뵙고 성묘를 하고 옛 동무들과 만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정겹고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풍경도 그러나 한 세대쯤 뒤에는 거의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으니 서운한 생각도 든다.

도시에서 태어난 세대가 늘수록 고향상실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정도로나 도시화율로 볼 때 이미 고향상실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불과 한 세대만에 급속히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됐으므로 정신적으로는 고향이라는 정서가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고향도 좋고 옛 친구도 좋고 조상묘소 찾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정서가 어느 한 쪽, 즉 1차 집단에만 너무 쏠려 있다는 것은 심각히 생각할 문제이다.

가족이나 친지모임 교회 등은 이해관계가 없는 원초적 집단이다. 이런 집단들은 개인에게 소속감을 주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반면에 우리의 생활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국가나 민족, 세계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누가 민족·국가의 발전에 보다 기여할 것인가라는 생각보다 자기네 지역 출신에 호감을 갖고 투표를 한다거나 자기와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아다시피 현대는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분야가 국가 안에서 또는 국가간 단위로 이루어진다.

사소한 일용품을 만드는 공장도 국내시장이나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것이지 일정 지역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다.

흔히 우리 스스로 ‘물질은 웬만큼 해결됐지만 정신은 아직 멀었다’라는 자기 비판을 한다.

필자 역시 이런 비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오히려 물질적 수준의 향상에 걸맞게 정신적·도덕적 향상도 있어야 할 터인데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인맥·지연·학연 등은 사적인 것이다. 이 사적인 분야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국가·민족·인류라는 보다 높고 넓은 세계에 대한 고려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요즘 ‘쏠림현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친다는 것은 어는 한 쪽을 희생시키는 결과가 된다.

쏠림현상은 정신적 불균형이고 불구인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중용이나 절제, 또는 균형과 조화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하지만 행동은 극단으로 달리는 쏠림현상이 지배했다.

극단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정당화될 수 있다.

과거 4·19나 5·16은 이런 시각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사정은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선진국 대열로 나아가야 하는 단계이다.

보수할 것도 없는 나라에서 보수적으로 일관하여 사회의 정체를 초래한다거나 어설픈 철학이나 이상주의를 내걸고 환상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위험한 행동이다.

추석은 축제가 적은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해방감을 맛보며 정을 나누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음미하고 시민으로서의 자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요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누가 무엇을 해서 얼마를 벌었다는 등의 얘기가 주종을 이룬다.

여기에서 인생문제에 대해 설교할 생각도 없고 또 그럴 능력도 없지만 돈은 삶의 수단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 나름의 인생관을 갖고 의미 있게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것말고 무엇이 자신을 만족시킬 것인가.

주변의 평가? 만약 당신이 훗날 ‘그는 돈은 상당히 벌었지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라는 평판을 듣는다면 당신의 수고는 당신을 훼손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윤리의식은 그야말로 시궁창에 빠진 느낌이다. 먹고 살만한데도 뇌물이나 특혜 얘기는 과거보다 더 자주 등장하고 온갖 사기나 부정식품 얘기는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소집단 즉 가족, 친구, 고향 동아리, 교회 등에는 성실하다. 그러나 조금만 먼 곳, 그래서 잘 보이지 않는 국가나 인류에 대한 생각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케사르는 이미 2천년 전에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본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잘 음미해 보자. 보이는 것만 보는 민족이라면 크게 될 가망성은 없다. 그럭 저럭 쫓아가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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