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술래잡기가 생각납니다.

술래가 눈을 가리고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외치면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사라질 시간이 충분하다 싶었을 때 슬며시 고개를 들면 앞이 깜깜해지죠.

어디부터 찾을까? 누구부터 찾을까? 이 곳 저 곳을 두리번거리다 결국 아이들을 다 찾고야 맙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숨어있는 아이를 혼자 찾아야 하는 부담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몇 명만 잡아놓으면 이미 잡힌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으로 나머지 아이들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술래잡기를 하면서 우리는 잠시나마 하나가 됩니다. 또한 숨어 있는 아이들을 찾을 때마다 매번 묘수가 생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죠.

그 묘수가 창의성 아닐까요?

술래잡기는 또래 관계를 만들어 주는 훌륭한 놀이입니다.

본래 조선시대 때 도둑이나 화재 등을 감시하기 위해 밤에 궁중과 서울 둘레를 돌아다녔던 '순라'에서 비롯된 말인데 이것이 변하여 ‘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놀이문화는 본래부터 일정한 모양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살다보니 그렇게 발전된 거죠.

그래서 그런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문화는 별것 아닌 것이고 슬며시 들추면 금방이라도 나타날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놀이는 서로간의 눈빛과 음성, 몸짓 등으로 대화하는 소통으로서의 예술이자, 서로의 마음을 견주어보는 치유로서의 예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형태인 다양한 놀이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니까 아무리 꼭꼭 숨어도 다 찾을 수 있겠죠?

요즈음 문화는 옛날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작지만 우리가 처한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를 예로 들어볼까요? 학교마다 이맘때면 축제가 열립니다.

무대를 꾸미고 조명을 설치하고 연예인과 다름없이 춤추고 노래 부르며 학생들은 열광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축제는 공연을 의미하고 ‘공연하는 것’만을 ‘축제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연예인 따라잡기로 재미있게 즐기긴 했지만 한사람도 빠짐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축제는 아닙니다.

공동체의 장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죠.

다른 청소년의 문화로는 입시제도가 만들어 놓은 열공(열심히 공부하는)문화와 인터넷 매체가 만들어 놓은 개개인의 암묵적인 갈등문화가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감각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공허한 문화입니다.

학교축제에서 뜨거운 열기를 가진 어린 가슴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 채 칸칸이 나뉜 모습으로 욕구를 분출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욕설과 폭력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이제부터 어른들의 자각과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수성들을 찾아내는데 누구나가 1%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때입니다.

손잡고, 만지작거리고, 부둥켜 않고 함께 뛰기를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감수성을 되찾고 공동체를 느끼게 하는 노력은 바로 문화예술교육의 목표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을 통한 문화교육을 의미합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좋고 어른도 함께 예술을 통한 문화교육을 할 때입니다.

예술은 은유와 상징을 내포한 일상의 한 단면이고 고품격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수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고 놀이와 같이 관계를 형성하기에 매우 좋은 공터가 될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문화교육, 이제는 작은 문화라도 우리가 만들고 소중히 가꾸어 가는 넉넉하고 포근한 문화사회를 꿈꿀 때입니다.

자, 우리 모두 보일락 말락 하는 문화를 찾아 술래가 되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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