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른 원도희의 작업실은 마치 한차례의 격전을 치르고 난 전장(戰場)을 연상시킨다.

여기저기 나뒹굴어 있는 재료·도구들, 그리다 만 그림들, 그리고 소파에 육신을 내던지고 연거푸 담배를 피워대는 화가의 모습은 작업형식을 바꾼 후 그가 겪었을 고충의 일단을 보여준다.

그간의 작업과정이 그만큼 치열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원도희의 작품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 그의 그림은 붓의 간섭을 멀리한 채 균질적 화면에 대상을 숨기는 대신 작가의 내면에 잠재된 조형의식을 표출시키는 방식을 선호해 왔다.

그는 작업과정 중에 드러난 유형·무형의 형태들과 선적이라기보다는 면을 주조로 하여 화면 전체에서 드러나는 회화성에 천착하는 양상을 보여 온 것이다.

즉 원도희는 화면의 마티에르를 극소화하여 매재(medium)가 갖는 물성이나 내재율 등 자동기술적 성격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한 조형감각에 따른 화면의 내적 질서와 미적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 드러난 변화의 양상들은 우리를 예기치 않은 조형세계로 이끌고 있다.



우선 그는 화면에 해독 불가능한 여러 의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형태들은 기호가 아니라 형상이라는 개념을 빌어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주는 언표로 작용하거나, 또는 그의 심상이 만들어 낸 어떤 의미들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변형된 인용부호들이다.

따라서 그것은 의미전달이라는 단순한 기능으로는 동일화될 수 없는 형상들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형상을 주조로 면과의 어울림을 통하여 색·면의 조화성을 확보함으로써 회화에서 모든 필적의 근원과 영원한 현재를 동시에 포괄하고자하는 조형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때 그의 작품은 작업실이라는 노동공간과, 화폭이라는 회화적 공간에서 작가가 겪는 노동의 흔적과 긴장감, 그리고 이에 따른 작품의 생명성이 그대로 노정된다.

이는 인간의 의식상태는 사물이 아니라 진행과정이기에, 미술작품에 대한 파악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오늘날의 미학적 명제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원도희의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진실이란 그 메시지 속이나, 현행의 의미를 구성하는 전달체계 속, 그리고 기교적 숙달도에 연관된 사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주어 누르고 획을 긋고 이를 해체해나가는 과정 속에, 즉 고동치는 몸속에, 그리고 몸에 의해 보전되는 정신 속에 있는 것임을 성찰토록 해준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인천예술고에 재직 중인 중진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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