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가 50호를 내놓았다.
1년에 네 차례씩 꼬박꼬박 계간지로 발간된 황해문화가 12년만에 50호를 내놓은 것이다.
1993년 창간된 '황해문화'가 처음 나올 때, 1980년대의 급진적 변혁운동의 힘이 민주화, 문민화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그 열기가 식어버리기 시작한 해라면,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추세 속에서 본격적으로 탈근대의 소용돌이 속에 편입되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지한 것, 본질적인 것, 구조적인 것에 대한 크고 무거운 질문은 사회 전반에서 생략되거나 배제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황해문화'는 이 시기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난제들과 그것들의 역사적 연원과 세계사적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부단히 힘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오늘 '황해문화'는 이제 이 땅의 진보적 저널리즘의 계보를 이어가는 하나의 뚜렷한 줄기를 형성하게 됐다.

50호를 맞아 '황해문화'는 어떤 계간지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파격적인 기획과 편집으로 꾸몄다. 그간 '황해문화' 편집의 근간을 이루었던 기획체제, 즉 특집과 기타 여러 고정기획, 창작, 문화비평, 서평 등으로 이루어져 온 익숙한 체제를 일시 중단하고 한 권의 단행본과 같은 체제로 특별호를 만들어 낸 것이다.
50호는 ‘대한민국’의 상처와 희망'이라는 제목과 ‘황해문화 50호가 이 땅의 50인에게 듣는다’라는 부제를 내세웠다. 2006년 봄, 이 땅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각기 다른 경험과 생각과 욕망을 가진 50여 명의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남녀, 노소, 좌우, 빈부, 도농, 노자를 가리지 않고 한반도의 근대 100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우연이건 필연이건 현재 이곳의 위치에 이르게 된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와 희망을, 고통과 욕망을, 빛과 그림자를 한 자리에 다 모아서 소용돌이치게 하는 카니발적 기획을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는 독립운동가 후손과 친일인사 후손, 의문사 가족과 고엽제 피해자, 외국인 노동자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자유기업원 논객과 도시빈민, 인혁당 관련자와 납북자 가족, 북한인권운동가와 통일운동가, 성전환자와 동성애자, 탈북자와 재일동포 등이 서로 다른 역사와 내력과 상처와 비원, 상반된 입장과 동떨어진 희망을 한 자리에 모여 밝히고 나눔으로써 우리 시대의 공시적 단면을 파노라마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이 서로 다른, 하지만 모두 이유 있는 아우성들을 한 자리에서 들으면서 독자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공시적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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