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년전 우연히 서울에서 “서태지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인디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진 대상은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서태지가 아니라,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서태지의 수많은 팬들이었다.

영화 내내 우리는 서태지 대신 여러가지 형태로 생상-성장-퇴화하는 ‘팬덤’을 목격한다.

서태지의 팬을 통해 이 영화가 그린 대중문화의 주체란 대부분의 미디어가 촛점을 맞추는 방식의 선망으로 뭉쳐진 껍질이 아닌, 보다 스스로 운동하는 개별자들이다.

이 영상 보고서가 취한 시점을 화두로 빌어온 까닭은 ‘사동 30번지’라는 필자의 개인전에서 다루어진 내용이 결코 어쩌면 ‘사동 30번지’ 이상의 주소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동 30번지’는 개인전이 이루어진 주택의 정확한 현주소(인천 사동 30-53번지)가 아니라 팔년 이상 방치되기 이전의 주소로 이제는 공식적인 의미와 효력을 잃은 상징적인 주소이다.

엄연히 30-53번지에서 전시가 개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0번지를 앞세운 까닭은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 바가 ‘장소’가 아니라 ‘장소성’이기 때문이다.

사동 주택의 곳곳은 시간과 주거의 부재를 드러내지만 구체적으로 왜 비워져 있었는가를 설명하지 않고 묵묵히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곳에 설치된 ‘미술’ 역시 인천 사동의 역사 혹은 지리적 위치는 물론 사동집의 사연 등을 밝히고 있지 않다. 어스름한 조명으로 밝혀진 거미줄, 정글에 늘어진 야자수 줄기와도 같은 벽지, 목조 구조가 드러내는 흙벽 등은 집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구조이면서 동시에 필자가 작가로서 드러내고 싶었던 ‘장소성’을 대변한다.

이와같이 주택의 디테일들은 작가의 연고 혹은 개인사를 안고 있지만 무언의 동의 아래 관람자와 호흡하면서 또 다른 공감대를 마련한다.

보통의 미술관 혹은 화랑 방문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미술은 작가의 손과 노력으로 빛어낸 미술작업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전시 내에서 구태여 작가의 작업과 기존의 집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색종이로 제작된 기하학 결정체, 사동집을 조망하도록 마련된 전망대, 링겔대에 걸린 조명, 세탁건조대에 천을 씌워 만든 조각물 모두 사동집과 같은 편인 양 어떠한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고 딴전을 피운다. 대신 빛과 반사, 바람과 냄새, 조망과 숙고의 장소로 이곳을 재정의하고 있다.

즉 이 장소 전체에 흩어져 있는 소멸된 역사와 소진된 의미체계는 이제는 '30-53번지'보다는 '30번지'에 더 가까울 만큼 해석의 여지로 가득한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이다.

막상 우리가 사동집에서 나누는 경험은 인천의 한 구역 사동이 증거하는 사회적 의미와 도시학적인 구분과 해석과는 다르다.

동시에 흉가 혹은 폐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결핍, 소진, 스산함 등의 보편적 감성은 사동을 사동 이상의 장소로 느껴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동 30번지’전이 ‘이것은 서태지가 아니다’라는 영화와 상관관계를 갖는다면 그것은 서태지라는 현상 대신 ‘팬’이라는 이름의 개별자들의 집합-공동체-과 이들의 생태학을 다루었기 때문이리다.

자체존립적이고 자발적인 개별자의 비선형적인 삶이 거처하는 장소로서 사동집을 다시 사고해 본다.

‘사동 30번지’는 인천이 아니라 미술의 공간이며 가려낼 수 없는 그러나 능히 감지할 수 있는 공동체의 주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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