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임금이셨던 세종대왕 역을 맡아 남들이 누리지 못한 큰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올해 아흔 다섯 되신 부친께서 가장 대견해 하시더군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습니다.”

농협중앙회 옹진지부에서 수신팀장으로 근무하는 이군익(45)씨는 올해 평생 잊지 못할 기쁨을 누렸다. 지난 9일 한글날을 기념해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한글 창제 563돌 기념 훈민정음 반포 재현 행사’에서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세종대왕 역을 맡았던 것. 이날 이씨는 예전 임금이 입었던 곤룡포 차림에 어연을 타고 근정전에 입장한 뒤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의례를 진행해 관람객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이씨는 행사를 주관한 세종문화회관 측이 올해 처음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당당히 세종대왕 역에 선정됐다. 과거 행사 때에는 연극 배우들이 세종대왕역을 맡아 일반 시민이 맡기는 그가 처음이다. 세종대왕의 차남이었던 계양군의 18대 후손이기도 한 그는 연로하신 부친께서 흐뭇하게 생각해 무엇보다 즐거웠다고 했다.

이씨는 훈민정음 반포 행사에서 세종대왕을 맡기 이전에도 ‘지게 효자’로 인터넷상에 화제가 됐던 인물. 늦둥이였던 그는 지난 2006년 6월 직접 지게를 만든 뒤 이 지게에 부친인 이선주(95)옹을 태우고 금강산을 구경시켜 드렸는데, 이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었다. 그는 “부친께서 늦은 연세인 50세에 저를 낳고 애지중지 길러 주셨는데, 이 은혜에 비하면 금강산 구경을 시켜 드린 것은 자그마한 보답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씨는 “세종대왕은 훈민정음뿐 아니라 백성들의 농사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사직설’도 발행하도록 했다”며 “이를 보면 진정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신 임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 초기에는 농업기술 서적이 주로 중국 서적뿐이었으나 우리 농사 현실과 맞지 않아 세종이 농사직설를 발간토록 해 당시에는 최고의 농업 기술서로 통했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지 않으셨다면 지금도 국민들이 한자를 쓰느라 어려움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 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주체와 의미, 제정 날짜까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입니다. 우리 민족의 최대 자랑거리이지요.”

그는 “요즘 인터넷 등에서 국적 불명의 언어가 난무하는 등 소중한 우리 글을 소홀히 다루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세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우리 글을 지키고 사랑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준회기자 jhk@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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