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의 무대에서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인하대학교 허우범(48) 홍보팀장은 고전 ‘삼국지’의 현장과 유적을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틈만 나면 중국을 드나들었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중국행은 늘 삼국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더니 덜컥 ‘삼국지 기행’(성안당 출)이란 520쪽 분량의 두툼한 단행본을 22일 펴냈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배송지주’ ‘세설신어’ 등 관련 서적은 모조리 챙겨 읽었다. 책으로 읽는 것도 부족해 중국을 넘나들었는데 이젠 자신이 삼국지의 또 다른 버전을 낸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영웅들이 뛰어놀았던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갔습니다.” 도원결의의 무대가 됐던 장비의 고향 탁주에 갔을 때 건물의 간판들도 ‘도원병원’ ‘장비반점’ ‘도원공사’ 등이 눈에 들어와 ‘삼국지연의’의 고향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허 팀장은 단순하게 삼국지의 무대만 쫓지 않았다. 고전으로 통용되지만, 삼국지의 내면엔 이민족 역사에 대한 자의적 예단과 함께 중화민족의 우월성이 담겨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중국인 입장에서 삼국지는 21세기에 ‘중화제국’을 구현함으로써 과거의 영화를 되찾는 데 꼭 필요한 문화콘텐츠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자칫 동양의 보배로 평가받는 삼국지가 우리의 정신과 삶의 자세를 편향과 오류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진수의 정사와 달리 나관중의 삼국지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가미했기 때문이다.

허 팀장의 은사인 인하대 인문학부 최원식 교수는 “한국인의 눈으로 새로이 해독함으로써 ‘삼국지’ 해석의 또 다른 길을 보여준 것”이라며 “비전문가의 전문성이 빛나는 독특한 삼국지론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인하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허 팀장은 1988년부터 모교에서 재직하면서 늘 책을 끼고 살아왔다. 지금까지 책을 구입하기 위해 억대에 가까운 돈을 썼고,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집안에 귀한 책이 넘쳐난다는 사실은 이미 학내에서도 꽤 널리 퍼진 이야기다.

독서를 겸한 여행을 좋아해 10여 년 넘게 ‘책벌레답사회’를 이끌며 매년 테마여행을 주도한 그가 삼국지의 현장을 분석한 책을 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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