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남 목포에서 천재소리를 들었고, 전국의 수재들이 몰리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인천에 둥지를 틀었고, 노동·시민사회계와 환경운동에 청춘을 바치기도 했다.

2003년엔 환경운동연합 6대 사무총장에 자리했다. 전국의 회원들이 참여한 직선제 투표를 통해 선출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당시 부인도 여성단체의 사무총장에 자리하면서 시민운동 사상 처음으로 부부 사무총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중앙무대인 서울에서 다시 인천으로 귀환한 서주원(50)씨는 지난 2008년부터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상임회장을 맡고 있다. 동시에 본업이었던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직도 수행하고 있는 등 거버넌스 영역과 시민사회계를 두루 포괄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인천신문은 인천의제21 사무실에서 서주원 회장을 만났다.



- 시민·환경단체와 의제활동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1990년도부터 인천에서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건설, 계양산 개발, 굴업도 핵폐기장 등 굵직한 환경문제가 이어졌다. 1994년 인천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졌고,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다.

비슷한 시기인 1992년 전세계의 정상들이 모여 리우환경회의를 개최했고, 거기서 합의해 나온 게 ‘아젠다21’이었다. 시민단체로서 정부와 시와 대응해 비판하고 싸우는 흐름이 있었지만 환경문제는 그렇게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았다. 때론 정부, 기업들과 협력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아젠다 정신이 필요했다. 좋은 모범이 됐던 것이 영흥화력발전소 문제였다.

- 영흥화력은 좋은 전례다. 계양산 롯데골프장, 굴업도 개발, 송도11공구 매립 등 환경논란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중재자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 의제가 할 수 있지 않나.

▲동의한다. 의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두 가지가 있다. 협력해서 할 일만 의제의 사업으로 하자는 생각이 있다. 반면 시민, 관, 기업 등 3자간에 토론과 논의 등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의제 운영과 관련해서 전자에 머물러 있다. 지역 현안을 의제로 끌여들여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현재 의제21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자인하고 있다.

앞으로 의제는 지방정부나 기업들이 시민들과 마찰을 빚고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를 논의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기구가 돼야 할 것이다.

- 인천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1979년 인천에 처음 왔으니, 이제 꼭 30년이 됐다. 당시 옷을 만드는 반도상사에 민주노조가 있었는데, 조합원들에게 야학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야학을 하면서 노동운동에 뜻을 품었다가 치안본부에 끌려갔다.

다시 공장에 가면 신분이 드러나 한국화약에 입사했다. 그런데 폭약을 만드는 곳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치안본부 측에서 바로 본사로 보내더라.(웃음) 당시 부장이 ‘너가 얼마나 백이 쎄길래 본사로 바로 가느냐’며 이상한 시선도 보냈다. 이후 1년 정도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노동운동계로 갔다. 당시 대우자동차가 파업을 했고 이때 홍영표, 송경평 등 친구들과 함께 했다. 1987년 구속된 이후, 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공개활동으로 전환했다.

- 노동운동에서 환경운동을 바뀌게 된 계기는.

▲1987년 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을 할 당시 전국적으로 민주화 바람이 불었죠.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란 단체가 생겼는데 인천에는 지역조직인 인민련이 있었다. 전민련 중앙위원과 인민련 대표로 활동했다. 1991년에 강경대 사건이 터지면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이후 초대 인천연합 사무처장을 맡게 됐다.

그러나 동구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민주주의라는 의제가 시민들에게 점점 후퇴하게 됐고, 싸움의 동력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과 함게 하는 운동을 할까라는 고민을 했고,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가지고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을 가졌다.

그래서 인천환경운동연합을 만들면서 초대 사무처장을 맡았다.

- 서울로 가게 된 이유는.

▲환경운동연합은 전국적인 조직이다. 당시 장기간 자리를 맡았던 최열 사무총장의 후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내가 사무총장이 되면서 서울로 가게 된 것이다.

- 다시 인천으로 와서 의제를 맡았는데.

▲지역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사무총장은 임기를 한번만 할 계획이었다. 환경련 사무총장을 마치고 1년 정도 미국에 가 있다가 다시 인천환경련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 물론 당시 환경교육센터 소장 등 서울의 일을 완전히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인천의제21 운영위원회에서 상임대표로 선출돼 활동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비판과 투쟁적 성격과 협치 등 거버넌스 성격 등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오는 21일 계양산 골프장 문제와 관련해 정상에서 단식농성을 할 계획인데, 이는 의제 회장이 아닌 인천환경련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다.(웃음)

- 의제는 일부 전문가, 단체의 전유물이 된 것 같다. 의제를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되는 게 아닌가.

▲의제는 시민들에게 단체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명칭이다. 예를 들어 ‘푸른인천21’이라고 하면 인천을 푸르게 만들기 위한 단체인가보다 생각할 텐데. 명칭을 바꾸는 것도 시민들에게 접근하는데 좋을 것 같다.

한편으론 의제가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들을 광범위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예산이나 인력이 충원돼야 하고, 각 분과에서도 활발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 부인(남윤인숙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은 어떻게 만났나.

▲서울 공대는 여학생이 없었다. 당시 농촌활동을 갈 때 여학교와 조인을 해서 가는 풍토였다. 새문안교회 대학생회를 통해 농활을 함께 갈 수 있었다. 2학년 때 였는데 지금은 소양호 때문에 수몰된 지역인 강원도 인제군 남면에서 농활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졌다.

집사람 고향이 인천인데 3학년 1학기 때 학내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제적을 당했고, 반도상사 노조에서 야학을 함께 했다. 장녀인 탓에 집안의 눈치도 보였고, 나 역시 서울대 나오고도 빈둥대는 것 처럼 보여서 묘안을 짠 게 바로 결혼이었다.

1981년 12월6일 결혼을 했다. 둘 다 노동운동을 할 생각에 공단에서 가까운 주안6동에 자리를 잡았다.

- 시민사회계가 위축된 면도 있고, 고민도 많은 것으로 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외부로부터 어려움이 야기되기도 했지만 시민단체 내부적으로도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고 시대에 맞게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시민단체 활동의 상당 부분이 밑으로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한다기보다 언론이나 정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언론에 나지 않더라도 수백명의 시민들이 움직이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끝나고 다른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근본적으론 밑바닥에서 시민들이 함께 움직이는 운동을 해야 한다.

- 앞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나.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만 했는데 그 이후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90년대 이후는 시민들과 밀착하는 운동, 그래서 환경운동을 하게 됐는데 앞으로 변화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환경운동은 문명을 바꾸는 근원적 운동이다.

계속 환경운동을 할지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독일의 녹색당의 형태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거칠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기 위한 운동은 손을 떼지 못할 것이다.

- 출마 등 정치쪽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단호하게) 아니요. 난 정치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렇게 하면 누가 사회운동을 하나요.정치운동보다는 사회운동에 남아서 역할을 하는 게 개인적으로 더 적절하다. 대담=양순열 사회부장·정리=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사진=안영우기자 dhsibo@i-today.co.kr

서주원 회장은

1959년 전남 목포 출생

학 력

▲목포고(1976) 졸업

▲서울대 공대(1981) 졸업

경 력

▲인천노동운동단체협의회 대표(1987∼91)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사무처장(1991∼94)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1994∼97)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2000)

▲한국NGO아시아센터 준비위원장(2002)

▲환경부 유해화학물질 대책위원 겸 기후변화 자문위원(2002)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2003)

▲Michigan State University VIPP 수료(2005∼2006)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2008∼)

▲인천으제21실천협의회 상임회장(2008∼)

기 타

▲논문으로 ‘지구환경문제와 인천의 산업’, ‘환경행정에의 시민참여방안’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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