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란 뜻인데, 어느 순간 작은 개울을 일컫는 ‘도랑’이란 말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역시 도심화가 원인이다. 때론 사방공사로 인해 인공구조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수천, 굴포천, 승기천, 공촌천, 나진포천 등 일부 하천이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인천시는 31개 지방하천과 120개 소하천까지 정비할 계획이다. 또 복개하천에 대한 향후 방향까지도 포함됐다.(인천시하천마스터플랜)

그러나 하천의 지류가 되는 도랑은 ‘관심을 둘 사안이 아니올시다’가 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하천복원계획이 온전할 수 없는 이유다. 아직까지 도랑에 대한 실태조차 없다.

본보는 23일 오전 인천시하천살리기추진단과 굴포천네트워크 관계자들과 장수산을 찾아 굴포천의 지류가 되는 도랑의 실태를 둘러봤다.



▲ 굴포천의 원류를 찾아서

장수산을 찾은 이유는 굴포천의 원류를 찾아보자는 의도다. 공촌천의 발원지인 계양산 일대의 산지하천이 콘크리트로 정비되는 등 사방댐 공사가 진행되면서 하천전문가들이 안타까워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본보 7월30일자 4면 보도>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하천의 본류를 살리는 데 매진했지만 정작 지류나 소하천은 등한시한 것이다. 오염 유입이 거의 없어 그야말로 자연형 하천의 진면목을 자랑하는 원류가 홍수 우려 때문에 사방공사의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을 뿐이다.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일원의 장수산. 굴포천의 지류인 청천천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특히 부평구는 지난 2004년부터 장수산 일대에 있는 양묘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는 10월 공개되는데 구는 생태를 컨셉트로 한 ‘인천나비공원’(18만㎡)을 조성하고 있다. 구는 생태하천으로 변모한 굴포천과 연계해 하천과 숲을 지역의 명소로 부각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나비공원은 생물다양성 체험존, 계곡 생태체험존, 숲 생태복원존 등으로 조성됐다. 학생들이 생태학습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묘장이었던 곳인지라 무궁화, 은행나무, 개암나무, 토끼풀, 질경이, 쑥, 망초 등 나비공원을 오르는 길목엔 다양한 식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 장수산의 도랑을 친환경적으로

장수산 일원 인천나비공원을 따라 올랐다. 곳곳엔 이렇게 깨끗한 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건천화돼 있는 곳이다.

나비공원엔 아주 작은 물줄기가 있는 반면 폭이 3m 이상 되는 도랑들도 있었다. 소하천법에 의하면 폭 3m 이상 하천은 소하천으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다. 자치단체에서 소하천으로 지정하지 않아 메워지거나 쓰레기가 덮여도 그냥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굴포천 상류 조사를 기획한 하천살리기추진단 최혜자 국장은 “도랑은 사람의 실핏줄과 같아서 실핏줄이 건강해야 순환이 잘되고 건강하듯 도랑이 살아야 하천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순서가 바뀌지 않았나라는 지적도 있지만 인천 도심의 5개 하천에 대한 오염이 너무 심해 도랑을 먼저 살리고 본류를 살리기에 한계가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누구도 오염된 굴포천이 또 승기천이 맑은 물이 흐르고 생태계가 회복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도랑까지 신경 쓰기엔 성공사례와 경험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함께 이번 조사에 참여한 굴포천네트워크 정성혜 간사는 “장수산에는 여러 이름없는 지류들이 많이 있다”며 “가재가 나올 정도로 괜찮은 곳도 있지만 온통 콘크리트로 호안과 하상을 포장하여 자연이 숨을 쉴 수 없게 해놓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천복원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시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진 것에 부응, 행정이나 하천공사를 담당하는 담당자들의 수준도 높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점은 나비공원에서 내려와 인근 청천약수터 쪽에서 장수산을 향했을 때도 여실하게 드러났다. 역시 소하천으로 지정할 수 있는 도랑이 눈에 띄었다. 약수터 방면엔 도랑이 복개돼 생활하수 냄새가 진동한 탓에 관리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장수산 쪽으로 오르자 ‘어린이물놀이터’란 팻말이 보였다. 도랑에 사방공사를 끝낸 뒤 비가 온 뒤 물이 모이면 어린이들의 놀이장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굴포천의 원류로 장수산 일원을 흐르는 도랑은 건천이라 항상 물이 흐르지 않는다.

행정이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는 이유이지만, 산 정상부에 빗물을 이용한 저수시설 등을 만든다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란 게 하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왜 도랑인가 ?

최혜자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사무국장

베르사유 궁전에는 변소가 없다. 유럽 사람들은 예전에 변소 없이 살았다. 분뇨는 요강 같은데 받았다가 창밖으로 아무데나 던져 버렸고 뒷골목은 그 자체가 변소였다. 모자나 코트는 똥 벼락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하이힐은 똥을 밟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더럽게 살다보니 도시의 강이란 것은 분뇨가 채여서 한번 빠졌다 하면 똥독이 올라 죽을 정도였다. 그러니 물이란 것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군인들은 물을 마시면 전염병을 옮긴다 하여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온 세상에 전염병을 퍼뜨렸는데 특히 미국의 원주민들은 전혀 이런 병에 면역이 없어서 90퍼센트 이상이 다 죽는 비극을 겪었다. 이 바람에 미국의 원주민들은 싸움도 못해본 채 백인들에게 땅을 다 뺏겼다. 강이란 것은 더럽고 냄새나고 전염병이나 옮기는 수채 같은 곳이어서 작은 도랑은 덮어서 하수도로 만들고 큰 강들은 물을 빨리 빼기 위해서 직강화하고 둑을 쌓아 사람이 접촉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물을 엄하게 다스렸다. 경국대전에는 도랑이나 강에 분뇨나 재나 오염을 버리는 행위를 엄하게 곤장으로 다스리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산에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고 똥은 싸들고 내려왔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금강산이나 백두산에서 관광객들이 누는 분뇨를 싸들고 내려와서 처리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습헌법’에 따른 것이다. 마을은 산기슭에 만들고 마을 뒤에는 숲을 두며 논밭은 마을 아래에 두는데 가장 아래에 논을 두어 논이 오염을 최대한 걸렀다. 그리고 도랑으로 흘러들기 전에 숲을 만들어 두어 도랑으로 흘러드는 물을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처리했다. 물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물길을 바꿔 돌리는 것을 가장 하책으로 쳤고 둑을 쌓아 물길을 제한하는 것을 중책, 있는 그대로 가만 두는 것을 상책으로 쳤다.

그러던 것이 4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유럽이 수백 년에 걸쳐서 망가뜨린 물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했다. 우리의 도랑들은 말라 버렸고 강은 오염되어 수돗물을 안심하고 그냥 마시는 국민이 1퍼센트도 안 될 정도가 되었다. 물길을 돌려 도랑을 직강화하고 도랑가의 나무를 베어내고 콘크리트로 둑을 쌓았고 둑에는 음식점이며 여관이 들어섰다. 땅 바닥은 콘크리트로 덮어 비만 오면 땅바닥에 있던 온갖 오물과 찌꺼기가 다 도랑으로 강으로 쓸려 간다.

도랑이란 마을앞에 흐르는 작은 실개천을 말한다. 지금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겐 낯설겠지만 물장구치며 놀고 가재를 잡던 놀이터요,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를 하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던 소통의 장이었다.

하천은 관리주체에 따라 소하천·지방하천·국가하천으로 나누는데 소하천과 지방하천은 지자체에서 국가하천은 국가에서 관리한다. 하지만 도랑은 관리주체가 없이 도시화 산업화속에 마을 앞에 흐르던 실개천들은 복개가 되어 흔적조차 사라졌거나 쓰레기가 버려져 온통 흉물스러운 곳으로 변해버렸다.

인천의 승기천·굴포천 등 대표적 도심하천에 대한 자연형하천조성사업이 민·관 거버넌스에 의해 마무리되고 생태계가 복원되는 중에 있다.

도랑은 사람으로 치면 실핏줄에 해당된다. 실핏줄이 잘 돌아야 사람이 건강하듯이 도랑이 맑고 깨끗해야 샛강과 강의 본류가 깨끗해진다. 상류인 도랑을 살리는 것은 하천본류를 살릴 수 있는 근원적인 방법이다. 도랑을 살리는 것은 옛 추억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마을을 살리고 하천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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