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완산구 풍남동과 교동 일원 252,307㎡(76,323평) 부지에 658동의 한옥이 몰려 있다. 연간 80만 명 이상이 다녀간다는 이 한옥마을엔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으로 대표되는 역사문화유적지는 물론 지역 고유생산품 한지 제조공방과 합죽선, 부채 등의 공예품과 인쇄술 등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천주교 성지인 전동성당으로 상징되는 종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성격의 건축물과 유서 깊은 장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시는 이 같은 유무형의 문화적 기반을 통해서 한옥마을을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로 키워냈다.

전주는 문화유산지수 전국 1위라는 자부심이 강한 도시다. 전통문화는 자원과 생활문화가 함께 공유될 때라야 만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전주가 그런 도시다. 비빔밥, 판소리, 합죽선, 한지 등의 자원은 전주시민들의 생활공간 속에서 손쉽게 찾아지는 아이템들이다. 후백제 궁궐터와 산성 등의 천 년 전 역사유적지와 600년 전 조선왕조의 발상지를 품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도시의 역사를 바탕으로 불과 100년 전에 조성된 풍남동과 교동의 한옥마을에 이르는 시간의 지층을 한 도시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이 도시가 누리는 특혜가 아닐 수 없다.



658동의 한옥이 도심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전국 유일의 동네가 전주 한옥마을이다. 서울의 북촌이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북촌의 경우는 1980년대 후반에 단행된 한옥보존지구의 해제 여파로 한동안 3∼5층 규모의 다세대주택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마을의 전통적인 경관이 많이 훼손되었다. 재산권 행사에 목말라 있던 주민들로선 당연한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기형적으로 변화되어가는 북촌의 상황을 주목한 몇몇 한옥애호가들과 한옥지킴이들의 자발적 보존 움직임으로 변화의 속도가 많이 주저앉긴 했지만 이미 동네전반의 분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전주의 경우는 달랐다. 북촌과 같은 시기에 4종미관지구로 규제가 풀린 풍남동과 교동의 주민들과 전주시민들은 이곳이 무분별한 개발논리로 변형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같은 주민들의 선택에는 나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전주시민들은 교동 한옥촌을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에 일제에 저항했던 민족주의적 의지의 상징으로 여기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성안에 퍼져 나가는 것에 대항하여, 전주 일대의 중산층들이 교동 일대에 의도적으로 한옥을 짓고 정착했다는 것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

일반 살림집이 일제에 항거하는 상징적 대상으로 고착되었다고 보는 시선도 흥미롭지만 해방과 6·25 전쟁 그리고 전쟁복구와 경제개발시대를 지나오며 이 동네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유지·보존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민들이 지닌 이 동네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에 더하여 전통테마마을재생에 따른 전주시의 지속적이며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4천200여 명의 주민이 상주하고 있다. 예의 민속촌과 같은 박물화 된 골동품으로서의 마을이 아니라 24시간 사람이 그곳에서 거주하며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명실상부 살아 있는 한옥마을이다. 조선조의 성지이자, 후백제 시대의 도읍이라는 유서 깊은 장소성의 내력을 즐길 줄 아는 주민들의 의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개개 건물의 품격은 높지 않으나 도시형 한옥의 군집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을의 장점이다. 동네를 거미줄처럼 엮고 있는 격자형 골목길에 묻어 있는 낮은 담장과 한옥의 표정은 가히 일품이다. 최근 개보수하는 한옥들로 고급화된 단지로 선회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지만 주민들이 마실 나올 수 있는 공공의 장소들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는 등 생활공간으로서의 품격은 타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마을만의 매력이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주거형식을 선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러한 저밀도 주거들은 매우 비경제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싶다. 그러나 전주한옥마을은 건축과 도시의 부동산 가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아파트지구로 재개발하여 평당가격으로 위안을 삼기보다는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고귀한 자부심이 더 가치있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지자체-시민-마을주민의 세 당사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바람직한 모델을 구축한 결과다.”(김봉렬)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의 조성을 꿈꾸는 주민들의 바람이 시정부의 일방적인 개발논리에 묻혀 있는 현실의 지도 위에 전주 한옥마을의 경우를 겹쳐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그러나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해온 도시동네의 보존은 새로운 도시 모형의 완충재로서도 의미가 크다. 인천시는 전주한옥마을의 본보기를 염두에 둔 배다리지역 특색의 보전과 발전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본문 사진제공: 김재경) <계속>

전진삼(건축비평가·격월간 건축리포트 ‘와이드’ 발행인·광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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