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아름다운 농장 만들기’ 사업이 경기도내 17개 시·군 축산농가 115개소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사업의 주체는 경기도의 지원을 받은 아름다운 농장 만들기 실천협의회. 이번호에 전하는 내용은 그 중 9개 시·군 농가를 중심으로 조경비평가 안명준(33)씨가 1년에 걸쳐 수행한 조경컨설팅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것이다. 그는 총 62개 농가를 현장답사하며 자문과 실제 구현 가능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물이 최근 책으로 발간된 것.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의 추진과 조성에 소중한 자료가 될 듯하다.



2008년 3월, 경기도 2청에 근무하고 있던 송아무개 사무관이 안명준을 찾아온다. 학과 사무실에서 소개를 받았다며, 겉보기에 40대 중반은 됨직한 송사무관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말보따리부터 풀어놓았다. ‘공해유발 요주의’ 대상인 축산농가에 조경을 하려고 하는데 방법론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축산농가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자체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축산 폐수와 악취 등의 오염원을 안고 있는 농가의 체질 개선이 시급한데 조경은 네거티브 요인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만남을 통해 송사무관은 전적으로 안명준의 말에 신뢰를 얹고 그의 까칠한, 그러나 너무나 성실한 주문사항을 사업의 내부 기안서로 옮겨 놓았다. 통상의 대학 내 연구자들이 그러하듯이 주저리주저리 문제점을 나열하면 인내심 없거나 사업에 대한 절실함이 없는 공무원들이 종종 발을 빼는 것을 보아왔지만 송사무관은 되레 집요하게 그에게 밀착해왔다. 그가 내민 두툼한 제안서가 전격 수용된 것이다. 지역에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한 뒤 해결책을 찾아 전문가를 찾아온 턱이기에 나름 기대도 했지만 그것이 덜컥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안명준은 조경전문가로서 자신이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를 자문하기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축산업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과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며 축산농가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해보자는 절체절명의 민관 협력 사업에 한 사람의 소장파 조경학자이자 비평가가 나서게 되는 과정은 사뭇 감동적이다. 사업의 중차대한 목표에 접근도 하기 전에 부수되는 쓸모없는 것들에 치여서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거나 형식논리에 사로잡혀 탁상공론에 머물 수도 있었을, 혹은 한 편의 연구보고서 아이템 정도로 남았을 수도 있었을 아름다운 농장 만들기 사업이 구체성을 띤 사업으로 정착하게 된 데에는 안명준과 송사무관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서 상대방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동지애에 기인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생산 현장을 만들어서 보기에도 청결하고, 즐거운 축사를 만들자. 그리하여 축산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키자. 이 단순하고도 높은 목표지점을 향하여 농가와 관이 발을 벗고 나선 현장에서 안명준의 조경디자인 방법론은 필요 이상의 조경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걷어낸 자리를 중심으로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주변경관과의 관계를 고려한 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적용되었다. 당연히 표준모델 방식은 지양되었고 반면 각각의 농장에 맞는 독특한 경관 만들기의 조경수법을 고민하였다. 안명준의 생각에 농촌에서 표준이 될만한 조경모델은 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각 농가의 자문과 동시에 학교 연구실의 후배들을 독려하여 중간 중간의 디자인 성과를 중심으로 ‘농촌 어메니티 환경설계공모전’에 출품을 하는 등 이상과 실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노력도 강구했다. 식재 중심의 단순 조경이 아니라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경관으로서의 조경계획에 기울인 그의 노력이 현장을 벗어나 연구실의 핵심 주제가 될 수 있었던 묘책이었다고나 할까.

“아직 아름다운 환경과 청결한 주변 경관이 가축들에게 주는 영향은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세균의 번식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는 환경은 가축들만이 아니라 농민들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지요. 더불어 아름다운 환경과 잘 관리되고 있는 축사의 모습은 농장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안명준의 말이다.

조경이 축산농가에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그는 확신하고 있다. 조경은 장식이 아니며, 살아 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생산활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그는 딱 잘라 말한다. 당장 눈에 띄는 조경으로 반짝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근본부터 아름다운 풍경이 되도록 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농촌도, 소비자가 믿고 찾아오는 새로운 형태의 관광루트로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장소의 고유한 성징을 가꾸는 조경계획일 때만이 풍경으로서의 경관이 완성되며 그것이 하나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도시에서도 다르지 않다. 농가의 현안을 극복해야할 자신의 문제로 수용하고 적극 가담한 행정 관청의 관심과 지원 그리고 전문가의 용의주도한 계획과 참여로 일군 경기도 내 일군의 아름다운 목장의 이야기는 오늘 배다리의 상황과 교차하며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본문 전체사진: 안명준 제공) <계속>

전진삼(건축비평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등 장 인 물

안명준 : 1976년 생. 서울대 조경학과와 대학원 생태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경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제1회 조경비평상 가작 수상과 함께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조경비평 봄 동인. 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형상적 사고를 조경에 활용하고자 고민 중이며, 경관을 매체로 보는 시각과 이용자 중심의 조경에 관심이 많다. 저서에 <아름다운 농장 만들기-조경으로 일구는 아름다운 풍경목장>과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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