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의 관통도로 계획은 배다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촉발시켰다. 정확히 논란이 시작된 때는 2007년 2월. 시가 막 1구간 공사 계약을 할 무렵이었다. 마을 주민 3명이 모였고, 송림동과 금창동 주민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10여 명이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와 별도로 문화예술인과 전문가들도 관심을 모았다. 문화단체들이 이 일대로 이전하기 시작하더니 그해 5월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까지 발족해 힘을 보탰다. 선전전과 서명은 기본. 각종 토론회나 문화축전, 도서 출간, 문화선언문 작성, 인문학 강좌 등이 진행됐다.

시가 이들을 보는 시각은 어떤가? “몇몇 운동권 출신이나 진보정당 관계자들이 관여할 뿐 주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주민대책위나 시민모임의 의의를 이렇게 폄하하다보니 갈등이 쉽게 봉합될 리 만무하다.

시는 문화재보호법을 지키지 않아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일대에는 인천창영초등학교 구 교사, 인천기독교 사회복지관, 영화초등학교 본관동 등 시가 지정한 유형문화재가 있었던 것. 인천의 3·1운동 발상지요, 최초 공립·사립학교 등을 들어 전문가들은 한국근대문화의 요람으로까지 평할 정도다. 한때 고서점이 즐비, 연구자의 발길을 모았던 헌책방 거리도 의의가 더해졌다. 그러나 시는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시 도로과와 문화예술과가 따로 논 셈으로 행정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대목이다.

배다리의 의미는 단순한 도로 개설 차원이 아니었다. 개발주의에 대한 폐해까지 확대됐고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을 정도로 퍼져나갔다. 경제자유구역과 구도심재생사업 등 개발사업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문화, 역사, 환경적 가치는 곁다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시민모임이 지난 해 6월 희망제작소와 손을 잡고 국회에서 ‘개발주의와 도시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토론회를 열거나 8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방문이 이어진 것도 이같은 이유다.

반대만 앞세우지 않았다. 각종 정책 자료를 접하면서 대안 마련에도 나선 것. 시의 관통도로 개설과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 촉진계획으로 이 일대의 근·현대 역사·문화 유산이 완전히 소멸될 위기라는 진단까지 나왔다. 아파트, 고층빌딩 등 획일적인 도시로의 변모가 아닌 역사, 문화, 생태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든 안이 바로 ‘배다리 에코뮤지엄(역사문화마을)’이다.

문제가 된 도로인 3구간을 전면 지화화하고, 동인천역 주변 재정비 촉진지구에서 배다리를 제외하는 것이 전제다. 인천에서 처음으로 민, 관, 전문가 등 협의체를 구성해 배다리 금창동 일대를 역사문화특구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이들의 ‘실험’이 성공할지는 이제 시의 의지에 달렸다. 이 문제는 시 도로과와 종합건설본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기획 부서 등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때라는 말이다.

시민모임 이희환 집행위원장은 “시는 단순히 민원에 밀렸다고만 판단할 게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조성하는 전례를 남기는 것도 의의가 높을 것”이라며 “3구간을 전면 지하화해 그 상부를 문화·역사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부가가치는 더욱 배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