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15.김상태 인천사연구소 소장

인하대 사학과 출신 5인이 2005년을 열자마자 ‘인천사 연구소’ 간판을 건다.

그동안 향토 연구가를 중심으로 지역사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져온 상황에서 역사 전공자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인천사 연구를 위해 학교에서 공부해온 우리가 뭔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이야기 해왔습니다. 향토사가들의 몫이 분명 따로 있지요. 더이상 미루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인천사에서 시작하되,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포괄하지 않는 학문은 없을 것이다 하는 방향성을 기저에 깔았습니다.”

인천사를 연구하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정식 출범한 것이다.

김상태 ‘인천사 연구소’ 소장이 그 중 한몫을 짊어지고 있다.

▲인천사에 관심을 갖다

“지금까지 인천 역사에 대한 논의의 98%가 개항이후 시기에 집중된 반면, 그 이전 역사에는 거의 관심을 돌리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마치 근대이후에나 돼서야 이 도시에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죠. 개항이 인천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생각컨데 그 시기 자료접근이 쉽다는 것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우리 연구소가 포괄해야 할 영역이 그만큼 넓습니다.”

사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인천사에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공은 한국사 중 조선 전기에 머물러 있었고, 내심 길례·가례·빈례·흉례·군례라고 하는 국가의례를 연구해보자는 마음을 묻고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인천에 온 것은 인하대 사범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하면서다.

대학 졸업후 교수 추천으로 고등학교 교사의 길이 앞에 던져진다. 이때 그가 선택한 것이 연구자였다.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박사학위를 얻기까지 17년이 걸렸다.

공부는 계속됐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연구원으로 들어간다.

국가적으로 기초학문 육성사업이 처음 시행되던 해 였다. 고문서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이 주어진다.

“전공하고 맞지 않아서 보람은 적었지만 초서를 배우는 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꼬박 3년을 몰두했어요. 돌이켜보건데 학문 연구를 위해 밑천이 된 시기였습니다.”

이제, 관심이 인천역사로 넘어간다.

당시 인문학 위기에 대한 담론들이 무성했다.

대학시절부터 지기로, 선후배로 자기공부에 몰두해왔던 이들이 모였다.

“각각의 전공 분야를 살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역사를 제대로 끄집어내보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학시절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온 남달우 박사와 그가 중심에 섰다.

후배 임학성 고려대 연구교수, 양윤모 인하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김현석 부평부사 편찬위원회 상임위원까지, 다섯명이 뭉쳤다.

▲읍지를 내고 강화충렬사지를 엮고…

“인천이 행정적으로 꽤 넓습니다. 인천인의 성격을 특징지으려 해도 인천사람, 부평사람, 강화사람, 교동사람이 각각 다르죠. 전통속으로 들어가면 각각의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여기서 주목한 것이 읍지(邑誌)입니다.”

연구소를 출범하기전 이미 인천시역사자료관으로부터 역사문화총서 시리즈 중 ‘인천부읍지’ 역주를 의뢰받아 2004년 한햇 동안 상당수의 자료를 찾아 번역을 마친 상태였다.

이어 지난해에는 ‘부평군읍지’를 풀어 단행본을 냈다.

“올해는 제3편 ‘교동군읍지’ 역주작업을 진행중입니다. 옹진, 강화가 남은 셈이죠. 내친김에 갑니다. 시리즈를 마치고 나면 읍지로 세미나를 열 겁니다. 전통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입니다. 읍지를 번역하다 보니 뜻밖에 인천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작업은 이런 식이다.

관청읍지와 사찰읍지, 개인이 소장했던 자료에 이르기까지 성격이 다른 읍지를 찾아낸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읍지를 저본으로 앞단계 자료를 더하는 작업으로 넘어간다.

인천관련 자료는 가능한 한 찾아내 번역하고 역주를 달다보니 책으로 묶은 것보다 축적된 자료는 훨씬 더 많다.

“자료를 나눠 번역한 다음 모여서 윤독하는 방식입니다. 각각 전공분야가 다르다보니 막히는 부분마다 넘어가고 교정하는 일을 상호 보완, 상승효과가 납니다.”

출범 첫해 성과물로 ‘강화충렬사지’ 발간을 꼽는다.

다섯 연구자가 1년동안 시간을 쏟아 완성한 책이다.

강화군청을 통해 충렬사 유림의 의뢰를 받았다.

그동안 충렬사에 대한 기록과 자료가 단 한번도 정리된 바 없다는 점에서 욕심을 냈다.

“개념은 충렬사 연혁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실록에서부터 문집, 비석에 새겨진 글, 개인 자료까지 문헌자료를 모았습니다. 배양된 인물들을 찾아냈죠. 이들에 대한 개별 연구는 앞으로 숙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충렬사가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드러내는 일입니다.”

한권의 책을 내기위해 수집한 자료가 사과박스 크기 상자로 열개가 넘는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시대별 인천의 인물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다는 것이었어요. 모두들 근대에만 집중해왔고 여전히 그쪽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통감한 순간입니다.”

▲연구소 문호를 열다

“연구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주위 독지가들의 후원 덕이었습니다. 운 좋게 공간문제는 술술 풀려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지요. 그동안은 연구할 수 있는 ‘우리의 공간’이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난달 처음으로 집들이겸 집담회를 했습니다. 누구나 와서 함께 참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연 겁니다.”

김 소장은 연구소 출범 목적이 전문성을 살려 인천을 공부하는 것이 첫째고, 그 공부를 대중화시키는 것이 둘째라고 소개했다.

두번째 목적을 위한 시발점이 집담회인 셈이다.

인천을 주제로 전문가를 불러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치렀다. 이달 25일 두번째 장을 펼 예정이다.

“역사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담론의 장입니다. 이제부터 인맥을 동원해서 사람들을 모으려고 합니다.”

▲자료축적이 우선

인천사 연구의 다변화를 위해 무엇보다 자료축적이 선행돼야 한다고 푼다.

“연구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논의를 위해 누군가 바탕이 되는 자료를 제공해야 하지요. 학교에서 줄곧 공부해온 전공자들이므로 토대가 되는 것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데 공감했습니다. 예컨데 지역 단체가 역사 관련 사안을 놓고 다른 방향으로 갈 때 지표가 있어야 이의제기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지역사회 논의의 중심에 있는 ‘각국공원(자유공원) 창조적 복원’에 대해 의견을 단다.

프로젝트의 핵심이 역사성임에도 불구하고 시행단계부터 역사 전공자를 일체 배제한 채 추진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국열강들의 침탈의 흔적을 되살려내는 것을 인천 정체성 회복이라고 논리짓는 것은 문제가 큽니다. 복원 자체를 많은 이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시가 조급하게 큰 돈을 투자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나 역으로 묻고 싶습니다.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므로 이를 제대로 살리는 것부터 관심을 가지라고 제언하고 싶습니다.”

마무리는 아니나 다를까, 다시 공부에 대한 정진이다.

“자료를 찾아내고 연구하고, 해서 성과를 차근차근 쌓아가다보면 인천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리라 확신합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사진=김기성기자 @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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