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을 되찾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친일재산조사위)가 18일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

광복 61년, 반민특위 해체 57년만에 친일파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벌어지는 것이다.

친일재산조사위가 늦었지만 친일파 청산 작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말 최용규 국회의원이 발의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친일파재산환수법)이 국회를 통과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최 의원의 보좌관으로, 친일파재산환수법의 실무를 담당했던 홍경선(43) 한국미래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감회가 남다르다.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부평미군기지 일대 2천900여평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 계기가 돼 시작한 일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국가를 상대로, ‘정의’에 어긋난 방식으로 얻은 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말이 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송병준 후손의 소송 제기 당시 국유지를 상대로 하는 각종 소송이 증가하고 있었다. 그 중 주요 대상이 일제시대의 토지였다.

일제시대 토지에 대한 소송 유형을 조사했다. 친일파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은 37건. 27건이 판결 종료됐고, 이 중 친일파 후손들이 승소한 건은 13건에 이른다.

정부의 조상땅 찾아주기 사업으로 친일파가 찾아간 땅이 2004년에만 110만평이나 됐다.

그는 친일파가 보유했던 토지 규모가 1억3천여만평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 중 이완용, 송병준, 이근호, 이해창 등 매국형 친일파 10명이 보유한 토지만 6천여 만평. 후손들이 부평미군기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송병준은 가장 많은 2천240여만 평을 갖고 있었다.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곳곳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부평미군기지다.

“송병준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한 땅은 전체 미군기지(16만1천여평)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소송에서 이길 경우 13만3천여평(3천억원 추산)이 그들의 땅이 된다.”

1심에서 송병준의 후손들은 패소했다.

친일잔재조사위는 ‘친일매국노 1호’ 송병준의 후손들이 소송을 제기한 부평미군기지 등에 대한 사전조사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조사 결과에 따라 현재 국방부 소유이긴 하지만, 부평미군기지가 친일파재산환수법에 근거해 국가에 귀속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관련 법안이 없어 판사들의 판결이 제각각이었듯, 더 이상의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는 그렇게 국가에 귀속된 부평미군기지가 시민공원과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

대단위 개발사업보다, 아픈 역사의 산 증거로 남아있길 원한다.

“인천시가 재정 등의 문제로 아직 2008년 반환 예정인 부평미군기지에 대한 토지 용도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재정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다.”

부산시는 올 8월 폐쇄되는 미군 하얄리아 부대 터를 시민공원화할 계획이다.

국회 행자위를 통과한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 부대의 양여비용 중 70%를 중앙정부가 부담할 수 있어, 부산시의 계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

부산시는 막개발을 막기 위해 2004년 미군부대 터를 근린공원과 공공공지로 결정 고시한 바 있다.

“관련 법안이 없다하더라도, 공원을 조성하거나, 국가지정 박물관을 세울 경우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이 크게 준다. 재정 문제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인천시의 의지가 더 큰 문제다.”

그는 “광복 61년, 반민특위 해체 57년 동안 친일파들이 재산을 되찾아간 적은 있지만, 국가가 이들의 재산을 환수한 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이번 조사위 활동이 늦었지만 친일 청산을 본격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김주희기자 juhee@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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