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앞바다 조그마한 섬 무의도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배를 탔다. 20대에 옹진수협에 들어가 세찬 파고를 넘으며 판매과장과 공판장장, 대의원, 이사를 거쳤다.

판매과장과 공판장장 시절, 이권을 둘러싼 옳지 못한 일에 맞서느라 죽을 고비도 여러차례 넘겼다. 한때 잘 나가는 꽃게 수출업자였으며 중구의회 초대의원을 지낸 뒤 1995년 인천수협 조합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 14년 가까이 어민들을 위해 봉직해왔다.

40년이 넘는 참으로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생사고락의 길을 걸어왔던 차석교(61) 인천수협 조합장이 이제 ‘하선(下船)’을 하려 한다. 오는 3일 퇴임식을 앞둔 차 조합장을 연수구 연수3동 인천수협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보궐을 포함해 모두 4차례 조합장을 지냈는데 정확한 기간은 얼마고 지금 심정은 어떠한지.

▲‘세월은 유수같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지난 95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3년하고도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너무 오랫 동안 조합장직에 머물러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4년 전에 떠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어쨌든 막상 떠난다고 하니 마음은 편하다.

-조합장 취임 초기 한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2년여 뒤 곧바로 IMF가 닥치지 않았나.

▲취임 당시 은행점포가 34개, 직원은 500여명, 연체비율이 27%였다. 정원이 300명인 여객선에 500여명이 승선하면 파도를 넘지 못하고 침몰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조직을 떠났다. 이러한 와중에 몰아닥친 IMF의 칼바람 속에서 그야말로 피눈물나는 구조조정과 절약을 통한 긴축경영을 위해 모든 임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일해왔다. 지금의 건전한 인천수협은 바로 그 결실인 것이다.

-인천수협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할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인천국제공항 건설에 따른 영종, 용유, 무의지역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송도국제도시 건설과 관련한 송도지역 4개 어촌계 생활대책용지 공급문제를 원만히 해결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자 보람이었다. 송도국제도시 지역에 어민생활대책용지 825㎡(250평)을 조성원가인 3억6천만원에 확보한 것은 향후 인천수협의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다.

또 상호금융부문의 오랜 경영압박요인이 돼왔던 전산운영비 문제를 해결, 매년 7억여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IMF 이후 수산업의 위축과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지난 7년 간 150억여원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인천수협이 전국 제일의 조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탄탄한 초석을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아쉬웠던 점들도 많을텐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청사신축은 생각할수록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여러 피치못할 사정이 있기도 했지만 3~4층 정도 규모에 30억원 가량만 투자했으면 좋았을 것을 결과적으로 고정자산에 너무 과도하게 투자한 셈이 됐다. 관리비부담도 부담이지만 조합평가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쳐 아쉬움이 남는다. 또 199년 영종신도시 건설 당시 용유 을왕지역에 영업점을 내지 못한 것, 무의도 광명항에 위판장 설립과 함께 관광어촌사업을 추진했었는데 무산된 부분들이 회한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다.

-수협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앞으로 수협이-농협도 자주 지적을 받곤 하지만-진정 어민들을 위한 단체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언을 해달라.

▲협동체 직원 대부분이 조합의 주인인 조합원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 책임의식이 희박한 실정이다. 또 금융기관 직원으로 스스로 생각하지만 시중 금융기관 직원들과 비교하면 능력이 많이 뒤떨어진다. 이러 부분에서 의식전환과 함께 끊임없는 자기계발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도 과감한 신·경(신용 및 경제사업을 말함)분리를 통해 무자격조합원을 정비하고 실제 어업에 종사하는 자격이 있는 조합원만을 위해 중앙정부 지원 아래 지도, 경제사업 위주의 협동체를 구성해야 한다.

-그 동안 고락을 같이 했던 수협 임직원들과 조합원, 후임 조합장에게 할 말이 있다면.

▲이번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직원들 간에 불신과 위화감이 만연됐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조건없이 직원들이 단결, 화합하지 못하면 인천수협의 미래는 없다. 인천수협의 르네상스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국제적인 경제불황에 따른 경기침체, 선거 여파로 인한 어수선한 내부 상황. 어려운 여건 속에 조창남 후임 조합장에게 조합을 맡기고 떠나게 돼 미안하다. 그러나 전 조합원과 임직원이 화합하고 단결해 노력하면 희망은 있다.

-이제 수협을 떠나 용유·무의개발을 위한 PMC(사업관리법인) 대표이사로 새로운 일을 맡게 됐다. 소감과 각오는.

▲20여년 동안 관광개발이란 족쇄가 채워지면서 모든 인허가권이 통제되는 바람에 지역 주민들이 받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지가하락 등 주민들의 엄청난 피해를 감안해 조기에 적정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고

주민들 또한 개인의 욕심만 주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천시와 주민들 간 매개체, 조정자 역할을 잘 해서 용유·무의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PMC출범으로 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용유·무의개발사업이 본격화하게 됐다. 앞으로 넘어야 할 일이 태산 같을 텐데 일정과 전망은.

▲워낙 큰 규모의 사업이라 전체 일정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올해 안에 토지수용보상을 종결하고 지장물조사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주민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보상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괄보상이다보니 워낙 방대한 자금이 필요해 쉽지 않으리라는 지적도 많다. 어떻게 보는가.

▲안상수 시장께서 일단 토지보상금 2조5천억여원의 보상은 확실히 책임진다고 약속한 바 있다.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또 이 부분이 이행되지 않으면 사업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시의 자금이 부족하면 계약금조로 우선 20~30% 정도 보상받고 잔금은 원리금을 계산, 주민 합의 하에 일괄보상을 받으면 된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자천타천으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정치와 관련해 앞으로의 생각은.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조그만 섬에서 태어나 한평생 수산업을 하면서 지역의 어업인들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그 것이 정치활동을 통해서이건) 지역 주민들을 위해 남은 생을 봉사하고 싶다.

그리고 급한 일이 마무리되면 당분간은 좋아하는 산이나 다니며 푹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재충전이 되면 사회에 수익 전액을 환원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 추진할 계획이다. 지금도 방안을 찾고 있다.

또 용유·무의개발사업이 잘 진행될 경우 재단을 구성해 장학사업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사업도 펼치고 싶다. 대담=이인수 편집국장 사진=안영우 부장 dhsibo@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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