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주(66) 전 인천청량초등학교 교장은 학생들에게 가깝게 다가서는 교육자로 유명했다. 40여년 간 교단을 지켜온 그는 ‘호칭’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자 인사라는 신념을 ‘전교생 이름 외우기’로 실현했다.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학교 운동장과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만나 이름을 불러주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 전 교장을 만나 교육자로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현재 교육계가 당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지난 교직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42년 간 교직생활을 하다 지난 2005년 8월 청량초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지난 1992년 남구 관교동 승학초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역할을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교장의 자세와 교육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생 제일주의’와 ‘수업 제일주의’를 실천했다. 교사들에게 학기초에 실시하는 환경정리를 못하게 했다. 학생과 정을 쌓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적 쌓기도 배제했다. 학생과 수업에 몰두해 만족감을 얻도록 했다. 부장교사 등 관리직에게 업무를 돌리고, 교사들은 수업에 몰두하게 했다.

선진국의 경우 자리도 학생들과 상의해 결정할 만큼 학생 중심적이다. 우리는 어렵다. 그래서 승학초 700여명의 이름을 외웠고, 자연스럽게 대화도 나눴다.

아침 자습시간의 풍경도 바꿨다. 학부모들에게 부탁해 1권씩 책을 사오라고 했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혔다. 학생들은 나중에는 어려운 책도 곧잘 읽었다. 한자도 익히게 했다. 글자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뜻을 알게 했다. 주말이면 시 한수와 생각해서 풀어야 하는 수학문제, 한자 단어를 묶어 ‘생각하는 학습지’를 만들어 나눠줬다. 학생 수가 많다보니 교사들의 원맨쇼가 되는 수업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 자율화 조치가 학교 현장에 도입된 지 1년여가 흘렀다.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가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현 학교 자율화 조치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학교 자율화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특히 교과과목 교사가 수업을 맡는 중·고교는 담임교사의 역할이 적다보니 초등학교가 우선 도입해야 했다.

실존주의 교육철학에선 교사와 학생 간 인간적인 신뢰가 쌓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이 ‘우리 선생님은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 교육은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끝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장이나 학교장이 아니다. 진정한 자율화는 교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율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것도, 교원 업무 경감 지침을 내리는 것도 교사들의 업무를 늘릴 뿐이다.

정책적인 큰 틀은 필요하지만 되도록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고, 간섭해서는 안된다. 선진국 상당수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없다.

학운위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하는 것은 학교 운영의 시행 착오를 줄일 수는 있지만 대부분이 교육에 대한 관심과 마음가짐이 우선 갖춰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또 능동적으로 내가 하겠다는 학부모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정치적이나 개인적인 사유로 학운위원에 지원하는 학부모가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교장의 전문성도 키워야 한다. 학교장은 교육 경력은 길지만 감각이나 행정 효율성에서는 젊은 교사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정년을 맞춰 교장을 나갈 수 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교장들은 자율이라는 ‘양날의 검’을 기피하는 것이다. “시키는 일을 하는게 가장 편하다”는 교장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지적이 교육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고,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 시장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공교육이 안되는 이유는 학교가 대형화됐기 때문이다. 학급당 학생 수도 여전히 많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둘다 만족시키는 교육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는 것은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자녀를 학원에 보내도 큰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지만 ‘내 자녀가 뒤쳐진다’는 불안감 때문에 보내는 게 현실이다.

사교육을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다. 공교육은 모든 학생들에게 맞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결국 부족한 부분은 사교육이 메꿔져야 한다.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학생들의 모든 과목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공존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영어나 수학은 일부 사교육에 의존하고, 학교는 독서교육 등을 강화해 논리적이고 능력있는 학생을 키워야 한다.

우리 교육은 ‘무차별 민주주의’라는 지적이 있다. 학생들은 모르는 문제를 놓고 자리만 지킨다. 공교육만 부르짖어봤자 해결책은 없다.

사교육 시장을 일부분 인정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IMF 이후 안정된 직업을 가지려는 젊은층이 교사들로 몰려 들었다. 수십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만큼 경쟁력을 갖추거나 열의가 있다고 보는가. 또 인천 교육의 고질병이라고 지적되는 학연·지연은 어떻게 보는가.

▲교사들의 사명감이 중요하다. 초임 교사에게는 학교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교사라는 직업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선후배가 이끌어야 한다.

현재 교사들의 수준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인천 교육계에 학연·지연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천 뿐만 아니라 충청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학교·지역 중심의 인사가 만연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 정부도 학연·지연에 따른 인사 배치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선출직의 한계일 것이다. 학연·지연은 ‘인사 청탁’ 등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같은 부작용은 해를 끼친다. 공직자 윤리를 지켜야 한다. 공직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면 해당 공무원은 무력감을 느낀다.

교육 인사는 능력있는 교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정부와 교육당국을 주물러서는 안된다.

일선 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현실이 돼야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당국을 축소, 최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가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를 바꿔야 한다. 선진국처럼 학교 자율화가 뿌리 깊게 내리면 시교육청과 지역교육청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 교육은 학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담=양순열 사회부장 정리=이환직기자 slamhj@i-today.co.kr 사진=김성중기자 jung@i-today.co.kr

이문주 교장은

이문주 전 청량초 교장은 지난 194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해 교직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이 전 교장은 인천만수초등학교, 신흥초등학교 교감, 승학초등학교 교장을 거쳐 인천남부교육청 장학사, 인천시교원연수원 교수부장(교육 연구관), 인천시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을 두루 역임했고, 지난 2005년 청량초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이 전 교장은 강의 경력도 짧지 않다. 지난 1998년~2005년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장 자격 연수과정(교육철학) 강의를 맡았다. 또 한문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토대로 지난 1999년부터 현재까지 인천대학교에서 교양한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년퇴임 이후에는 연수어린이도서관, 인천평생학습관 등에서 한문 강의도 맡았다.

이 전 교장은 저서로 ‘쉽게 풀어 쓴 신세대 명심보감(2004)’은 물론 ‘현대인을 위한 논어 상·하(2005)’, ‘동양고전명구의 향기(2009)’ 등을 냈다. 특히 신세대 명심보감은 제37회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교양 부문 사회과학 분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이들 저서는 대형서점에서 꾸준히 팔릴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이환직기자 slamhj@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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