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21세기를 ‘중국의 세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국의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다. 또한 그 중국의 발전을 도우며 함께 성장하고 있는 화교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 우리나라도 다시 화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의 오명을 씻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니었다. 차이나타운 건설을 희망하는 도시들은 많이 있었다. 서울을 비롯하여 인천, 부산, 경기도, 제주도 등의 지자체들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지자체의 힘만으로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는 것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일단 차이나타운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교를 모아야 했다. 화교가 없는 차이나타운을 차이나타운이라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은 자연적으로 발생해 발전하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나마 있던 화교가들도 거의 사라져버려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려면 화교들을 끌어 모아야 했다. 이미 기존의 사업을 하고 있던 화교들을 한자리로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많은 화교들이 전망이 불투명한 차이나타운 건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부지 확보도 쉽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화교가가 형성되어 발전된 경우엔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일부러 땅을 확보해야 했다. 이미 기존의 도시가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타운’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부지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지을 신도시에 차이나타운 예정지를 잡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따라서 차이나타운 계획은 뒤로 미뤄질 수 밖에 없었다.

또 투자유치도 어려웠다. 땅이 확정되지 않았으니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도 우리나라에 차이나타운이 들어섰다.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이미 화교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 차이나타운으로 만드는데 비교적 수월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국내 유명 중국음식점과 잡화점들이 들어서 있고, 삼국지 벽화나 중국문화원 등 볼거리를 갖추고 있어 차이나타운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또 중국어 마을을 운영하고 자장면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비록 규모면에서는 크지 않지만 한국 차이나타운의 효시가 된 것이다.

부산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가세하고 있다. 부산 초량동에는 1884년 중국영사관이 들어오면서 ‘청관거리’라는 화교가가 형성된 곳이다. 부산시는 이 ‘청관거리’를 1999년에는 ‘상해거리’로 개명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또 지하철 부산역을 중국테마역사로 리모델링하고 중국전통체험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뒤따라 경기도 고양시에 일산 차이나타운이 건설되고 있다. 일반적인 전통 차이나타운의 이미지와는 달리 현대식으로 건설되는 일산 차이나타운은 2009년 말 1단계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가 아니다. 물론 아직 초기단계라 부족한 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와같은 노력들이 계속되어 차이나타운이 발전해나가면 언젠가 한국 차이나타운이 세계에서 손꼽힐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이승훈 연구원

자연 형성 華僑街 그나마 사라져

도시개발·화교수 감소…특색 잃어

화교들이 머무는 나라에는 어김없이 차이나타운이 생긴다. 화교들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유럽 등 전 세계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했다. 차이나타운은 그저 화교들이 모여살기만 하는 단순한 마을이 아니다. 각 나라에 건설된 차이나타운들은 관광명소로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의 경우 관광의 목적을 잘 살려 디즈니랜드보다도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캐나다, 미국, 호주등의 차이나타운도 관광명소로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차이나타운의 존재가 그 나라에 화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이 활성화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화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소리이다. 또 화교들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은 차이나타운이 있는 그 나라에 화교자본의 유치가 보다 수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교 자본이 세계 3위로 들어선 지금 화교자본의 유치는 국가경쟁력에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화교들은 정착하는 나라마다 차이나타운을 건설했지만 유독 한 나라에서 만큼은 차이나타운을 건설할 수 없었다. 그 나라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듯이 바로 우리나라이다. 물론 지금은 인천에 작은 차이나타운이 있다. 하지만 이 차이나타운이 건설된 것도 21세기가 된 이후의 이야기이다. 화교가 한국에 정착하고 약 200년 동안 우리나라는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였다.

대부분 차이나타운이 건설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먼저 화교들이 모여들면서 점차 중국의 특색을 가진 거리로 변화한다. 그렇게 점차 변화해가는 가운데에 일부 자본가들이나 단체가 이미 어느 정도 중국풍으로 변화한 거리를 정비해 차이나타운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화교가(華僑街)들이 있었다. 서울의 명동, 흥천동, 비파동과 인천의 선린동, 부산의 초량동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이제 더 이상 화교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특색이 있는 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서울의 흥천동과 비파동의 화교가는 화교들의 활발한 상업지구였다. 흥천동에는 구두, 양장, 잡화, 음식 등의 상점과 유명한 한의원 등이 있었고 비파동 화교가는 화교들도 많이 거주했고 북창동 새벽시장에서 중국음식 재료를 파는 걸로 유명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도시개발계획으로 인해 이 두 화교가는 화교가로서의 특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명동의 화교가는 주한 중국대사관 화교 소학교 화교 협회 등이 집중되어 있어 중국의 특색을 간직한 거리였다. 하지만 중국대사관이 이전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화교들이 한국을 떠나 화교의 수가 줄어 지금은 중국음식점들과 몇몇 상점들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