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858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1987년 당시 정부는 이 사건을 제13대 대선에 이용하기 위해 폭파범 김현희를 선거 하루 전까지 압송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했고 1992년 대선 전에 발표한 남한 조선노동당사건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판단이 나왔다.

그러나 KAL기 사건은 북한의 대남공작조직 공작원인 김승일·김현희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기획조작설이나 사전인지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노동당 사건의 경우 당시 안기부 발표의 기본 내용은 모두 사실이지만 개별적인 3개 사건을 기계적으로 결합시켜 단일 사건으로 부풀려 발표됐다는 판단도 함께 내려졌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일 국정원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KAL기 사건 조사결과 중간보고서와 남한 조선노동당사건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진실위는 KAL기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 후 범정부 차원에서 대선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활용했음을 확인했다”며 “(1987년)12월 2일 수립된 ‘대한항공기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을 확인했고 정부의 태스크포스설치 내용이 든 문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이른바 김현희 ‘화동(花童) 사진’의 진위 논란과 관련, 1972년 11월 평양 남북조절위원회에 나온 화동 중에 북한 중학생이던 김현희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사진을 일본에서 새로 확보했다.

진실위는 사건의 실체에 대해 “‘폭탄 테러에 의한 추락’으로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라며 “김현희·김승일이 폭파범이라는 심증을 갖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물증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특히 지난 4월에 이어 5월 7∼16일 현지 탐사를 통해 미얀마 양곤에서동남방으로 300km 떨어진 하인즈 복(Heinze Bok) 군도의 타웅-파-라(Taung-Pa-La)섬 앞바다 해저에서 길이 38m 가량에 세 동강이 난 인공조형물을 발견하고 KAL기 동체인지 여부를 잠수조사를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진실위는 또 안기부가 김현희를 기소하기 전인 1988년 11월에 이미 관계기관과 사법처리 방안을 협의해 실형 확정과 동시에 구제한다는 방침을 결정한 사실과, 2심에서 무기 이하의 형을 선고토록 법원을 설득하려 한 점, 2심 판결을 앞두고 유가족일부의 김현희 구명탄원을 유도한 점 등도 밝혀냈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김현희씨에 대한 면담조사를 위해 10여 차례에 걸쳐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며 진실 규명을 위한 면담조사에 응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남한 조선노동당사건과 관련, 진실위는 “당시 정권이 처음부터 정치적 활용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간첩단과 정치인 관련설’과 같은 미확인 첩보, ‘북한의 민주당 지지 지령’처럼 민감한 사안을 공개한 것은 문제”라며 “그러다가 대선 이후에 ‘간첩단 관련 정치인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수사과정에서 일부 구타와 잠 안재우기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당시 피의자의 증언도 확보했다.

진실위는 그러나 이 사건 수사에 참여한 정형근 의원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할머니 공작원’ 리선실은 1990년께 황인오·손병선씨를 포섭하고 1991년 황씨와 함께 강화도를 통해 북한으로 복귀한 것으로 진실위는 판단했다.

2000년 8월 사망한리선실은 평양 근교 애국열사릉에 묻혔고 묘비에는 ‘당 중앙위원회 부장’ 직함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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