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나 ‘8·15’ 만큼이나 ‘7·27’도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1953년 북미간에 맺은 정전협정의 날인데, 이를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된 지도 꽤 오래됐다.



지난 20세기에 강조됐던 ‘전쟁’ 대신 앞으론 ‘평화’에 방점을 둘 때란 지적에 대해 거부할 명분은 이제 없다. 지난 해 동국대 이철기 교수는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경제협력과 교류가 증가하면서 인천항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즉, 남북간 평화가 정착될수록 이득을 볼 수 있는 도시가 바로 인천이라는 것이다.

대외적인 분위기도 순풍이다. 지난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찜찜하지만 지난 달 26∼27일엔 북한이 핵 프로그램 신고서를 중국에 제출했고, 핵개발의 상징인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됐다. 미국은 즉각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을 해제하고, 적성국 교역법을 종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민간차원에서 실시된 ‘한강하구 평화의 배띄우기’ 행사가 올해도 예약됐다. 역시 7월27일 정전협정 기념일에 실시,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작은 돌을 쌓게 된다.

▲지역간 네트워크

한강 주변엔 강화, 김포, 인천, 고양, 파주, 서울 등 다양한 지역이 인접해 있다. 각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역위원회’를 결성해 프로그램의 방향을 공유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해 중앙조직인 ‘평화의 배띄우기 조직위원회’를 설치했다.

인천 조직위원회(공동대표·박광원 박종렬 홍재웅)는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등 10여개 단체가 2008년 행사를 위해 수차례 회의를 개최했고, 지난 10일 서울 비폭력 평화물결 사무실에서 각 지역 네트워크의 경과보고 등을 통해 오는 27일 평화의 배 띄우기 프로그램을 논의했다.

26∼27일 김포나 강화 일대에서 ‘청소년 생명평화 캠프’를 개최하고, 27일 오전엔 민통선 인근에서 ‘한강하구 생태문화 탐방’을 실시하고, 오후엔 ‘08 평화의 배 선상 화해상생행진혼제’ 등을 치를 예정이다.

당일 배 위에선 김금화 만신을 중심으로 7대 종단이 함께 참여해 기도와 진혼굿, 합수식, 선언문 낭독 등을 실시, 한강하구가 분단·고립된 소외 지역이 아니라 문화중흥의 동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성과와 사회적 영향

2005년 시작된 평화의 배 띄우기는 다양한 지역,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각 시민단체 대표)이 참석하는 등 지역과 연대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교육 행사가 배 띄우기 프로그램으로 확대 발전하며, 각 지역의 평화자원과 생태자원이 축적되고 있다. 특히, 상설된 네트워크의 힘으로 여러 연중행사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간의 협력 사업이 가능해졌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북한, 특히 연해주와의 풀뿌리 연계협력사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한 분단국가로 DMZ와 한강하구에 대한 평화와 생태보호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강하구의 시작점인 장항습지를 발견했다.

▲공존의 땅, 한강하구

서해바다의 물이 신곡수중보를 넘지 못한 채 함께 떠 밀려온 토사를 쌓아 놓은 곳이 바로 한강하구의 시작점 장항습지다. 시베리아를 비롯해 동아시아와 호주 등을 오가는 물새들이 이용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1천700여마리만 남아 있는 저어새의 번식지이다. 재두루미와 큰기러기가 월동하는 곳이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합류부이기도 한강하구는 청둥오리, 흰죽지, 쇠기러기, 갈매기류, 까마귀류, 독수리 등을 포함해 연간 10만마리 이상의 물새가 도래하고 있다. 이 지역은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조류서식처’(IBA·Important Bird Area)라고 공인받고 있다.

또한 한강본류에서 떠내려온 유기물과 이들이 쌓인 강주변의 드넓은 평야, 강과 바다를 오가는 회류성 물고기와 게, 그리고 수생식물이 풍부해 이들 물새를 부양하고 있다.

대도시 인근에 있으면서도 자연수로와 범람원이 많아 평야가 발달하고, 군사지역인 탓에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면서 야생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한강하구 생태계를 일컬어 ‘인위적인 하구구조물이 없는 남한 내 마지막으로 남은 자연하구의 기수역생태계’라고 지적한다.

한강하구가 평화는 물론 문화적 건강의 원천이 되고, 인간·동물·식물·수생물 등이 소통해 ‘생명평화의 강’으로 복원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벤트 아닌 지속적 행사로”
이진권 ‘평화의 배’ 인천조직위 공동집행위원장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인천지역 조직위원회 이진권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행사가 이벤트성 사업을 넘어서서 평화, 발전, 생태의 세 요소가 통합되는 것은 물론 풀뿌리 시민들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연구, 워크숍 등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의 기억보단 평화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일에 사회적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평화와 상생과 같은 가치들이 풀뿌리 대중의 삶에 내면화하고 각종 사회적 제도에 구조화하기 위한 상징적 운동이 평화의 배 띄우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6·25’ 보단 평화의 단초가 될 수 있는 ‘7·27’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특히, 인천이 냉전의 가장 큰 희생도시란 점을 기억한다면, 평화운동의 당위성이 필요한 지역이 바로 인천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문에 전쟁기념관 등과 같이 인천지역에선 전쟁의 흔적보다는 평화를 상징할 수 있는 공간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단 인천뿐만 아니라 인접 도시에까지 이와 같은 분위기가 퍼져나가야 한다고 이 위원장은 강조한다.

“막혔던 뱃길이 열리고 우리민족의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 회복되고, 그곳에 조성된 동북아최대의 생태습지생물권이 보존되려면 남과 북이, 그리고 시민사회와 자치단체 모두의 지혜와 힘이 모아져야 합니다.”

이 위원장은 “서울, 고양, 인천, 강화등의 지역의 교육, 문화, 평화, 통일, 농업, 풀뿌리민주주의, 환경, 인권 등에 연루된 다양한 계층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연합해 평화의 배띄우기 사업을 계획하고 4년째 실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개성공단의 조성과 함께 한강하구의 이용 방안 등을 거론해 왔고, 인천시 역시 강화에서 개성까지 다리를 놓아 남북 간 민간교류 확대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타 한강하구 인접지역의 지자체도 옛 조강뱃길을 복원하고, 환경부 등도 이 지역의 생태보존 방안을 모색하는 등 사회적으로 집중을 받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이와 같은 기운이 민간차원, 특히 청소년 등에게도 퍼져나갈 수 있도록 워크숍 등을 통해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우리의 삶에도 일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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