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도, 그렇다고 머리띠를 두르고 반대할 수도 없다.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연평도의 분위기다. 남북정상들은 4일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라는 큰 틀의 합의를 일궈냈다. 휴전 54년만의 일이다. 대립과 갈등에서 평화와 공존번영의 길을 닦았다. 평화체제구축의 방법으로 서해 접경지역, 특히 연평도 북방한계선(NLL) 사이에 남북공동어로구역 설정이 거론된다. 군사적 긴장지대의 징표인 이곳을 민족상생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평주민은 이 같은 공동어로구역을 생존권에 생채기를 내는 ‘비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지경까지 온 데는 그 동안 정부의 먼산 바라보기식 태도에 있다.

연평도는 4~5년 동안 지독한 꽃게흉년에 시달렸다. 가구당 보통 5억~7억여 원의 빚은 보통이다. 여기에 중국어선 1천여척이 연평연안에 진치고 불법조업을 일삼았다. 그나마 있는 꽃게도 연평어민이 아닌 중국어민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견디다 못한 주민은 생명줄인 배를 버리고 연평을 떠났다. 남편은 건설현장 잡부로, 아내는 식당 설겆이로 생계형 벌이를 위해 인천시내로 나갔던 것이다.

정부는 연평의 처절한 몰락을 그저 지켜봤다. 생계대책은 고사하고 중국정부에 따끔한 경고 메시지조차 던지지 못했다. 고작 하는 일이라곤 배를 부수는 조건으로 올해부터 보상에 들어간 감척사업이었다.

다행히 고사직전 연평엔 보기드문 꽃게 대풍이 들었다. 때마침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평어민의 불안은 공동어로구역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이를 운용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공동어로구역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벌써 1993년부터 들먹거린 논제지만 세부내용을 놓고 남북군사당국 사이에 합의가 안돼 낮은 단계의 협의수준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남은 숙제는 공동어로구역의 수역, 적용시기, 조업 시기와 어선수, 입어료 등 높은 단계의 합의를 이뤄내는 일이다. 적절한 규제 없이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했을 때 남북평화와 공영은커녕 더 큰 갈등과 공멸을 불러 올 수 있다. 공동어로구역 역시 씨가 말랐던 4~5년 전 연평지선처럼 버려진 어장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효창기자 jyhc@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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