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설 기력조차 없이 몰락하고 나서야 꽃게 풍년이 찾아올게 뭐랍니까.”

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일 오후 3시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당섬 선착장. 해일호 선주의 아내 전모(50)씨는 45~50㎏ 들이 상자 39개를 가득 채운 꽃게를 보면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좀 더 일찍 찾아오지 않았던 ‘꽃게풍년’에 대한 야속함 때문이었다.

올해 9월 한 달 동안 연평도의 꽃게어획량은 201t. 지난 봄철(4~7월)전체 어획량 58t에 비해 거의 4배에 달했다. 하지만 전씨의 고민은 늘어난 꽃게어획량 만큼이나 크다.

그는 지난 봄 최악의 꽃게 가뭄 탓에 인천 시내로 나가 식당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했다. 가을철에 접어들면서 잡히는 꽃게가 부쩍 늘어 그 동안 진 빚도 갚고 최소한의 가족 생계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하루 반나절 동안 일해 꽃게 800㎏을 잡는 만선의 기쁨도 잠시, 꽃게 값이 절반 이상 뚝 떨어져 오히려 빚을 더 져야할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매일같이 선장과 선원 6명에게 주는 인건비 60만 원과 배 기름 값 35만 원, 그물 등 어구 비용 32만8천 원, 식비 등 이날 들어가는 비용 2백여만 원을 감당하려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씨는 “몇년동안 꽃게가 전혀 안 잡히는 바람에 연평도는 가구당 보통 5~7억여 원의 빚을 안고 사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어선 대부분은 조업을 포기하고 절반도 안 되는 배들만이 꽃게잡이에 나서고 있을 정도로 몰락한 게 지금 연평도의 현실이다.

현재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를 포함해 꽃게잡이 어선은 모두 53척. 이중 14척은 감축을 신청해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남은 어선 36척 중 실제 조업에 나서는 어선은 겨우 22척에 불과하다. 3~4년 동안 계속된 꽃게흉년 때문이다. 내년엔 16척이 또 감척을 기다리고 있다.

불어나는 빚더미를 감당 못해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한 이들도 한두 명이 아니다. 김모(54)씨는 지난해 연말 수협 빚 1억5천만 원을 갚지 못해 10t급 어선을 공매가로 8천만 원에 넘겨야만 했다. 2002년 3억5천만 원을 주고 샀던 김씨의 배는 가뭄에 콩 나 듯 했던 꽃게로 가격이 뚝 떨어진 것이다. 제 값을 받지 못하고 배를 넘기는 바람에 남은 빚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김씨의 빚은 다시 1억 원이 넘어섰다. 결국 김씨는 연평도의 다른 3명과 함께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대연평도의 장은숙(85)할머니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처지다. 부양가족조차 없는 장 할머니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물에 붙은 꽃게를 떼는 일을 한다.

장 할머니는 “그물에 붙은 꽃게를 손질하는 일로 하루 1만원 이상 벌기조차 힘든 처지”라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해 이 일도 허탕치기 일쑤다. 모처럼 꽃게 풍년이 들자 연평도 할머니들이 죄다 그물에 붙은 꽃게를 떼는 일로 돈 벌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연평도= 박정환·송효창기자jyhc@i-today.co.kr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