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올 가족도 없는 몸인데, 복지회관이나 가서 그곳 노인네들과 함께 나눠주는 송편을 먹을랍니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 쪽방촌에 사는 심정순(75·가명) 할머니 집에서 명절 분위기란 찾아볼 수 없다.

주변서 모아놓은 빈병과 신문지 등 폐지가 전부다. 약값이라도 보태기 위해 조금씩 모은 고물들에서는 쾌쾌한 악취가 풍긴다. 한국전쟁으로 평양서 월남하면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난 추석에 홀로 지내는 것은 예삿일이다. 그러다보니 할머니에겐 찾아올 자식도 형제자매도 없다.

“누군가와 대화를 해본지 오래된 것 같아. 복지회관에 가도 그저 다른 노인네들이 하는 얘기만 듣는 편이지. 추석이라고 별거 있겠어.”

심 할머니는 명절이 되면 그동안 아끼던 TV를 튼다. 심심함을 덜기 위해서다. 궁색한 살림에 노인 홀로 살다보니 가끔 찾아주는 복지회관 사회복지사가 그에게는 반가운 손님이다. 복지회관에 가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끼니를 때우는 것이 생활이지만 추석연휴 기간에는 갈 곳마저 없으니 오히려 명절이 싫다고 할머니는 전했다.

지난 2001년 국경을 넘어 중국 옌지(延吉)를 거쳐 탈북한 이성태(44·가명)씨는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다. 이 씨는 5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동네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정겹게 살았다. 그러나 이젠 가족들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실정이다. 고향을 떠나온 새터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들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고향에 남았을 걸 그랬어요. 지금 너무도 가족이 그립고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요.”

이씨는 일이 없는 주말이면 사회복지시설에서 홀로지내는 노인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북한에 있는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 더욱 이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는 이번 추석에도 홀몸노인들을 찾아가 직접 음식도 해드리고 함께 추석 연휴를 보낼 계획이다.

지난 2004년 11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말레이시아 출신의 몽키아라(Mont' Kiara·38·가명)씨. 올해로 한국에서 추석을 3번이나 맞이하는 그지만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그는 오는 11월이면 고용허가제 기간이 완료돼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말레이시아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이면 뭐해요. 우리같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먹고 살기도 힘든데다 이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기만 해요.” 몽키아라 씨는 추석 명절에 대한 질문에 말레이시아처럼 주변 인도계, 중국계 등 여러 민족을 초청해 함께 즐기는 다민족 축제인줄 알았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추석을 몇번 지내다 보니 오히려 이주노동자에게는 고향을 더욱 그립게 하는 쓸쓸한 축제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번 추석에 몽키아라씨는 아르바이트를 계획하고 있다. 유난히 긴 추석연휴 단돈 한푼이라도 벌어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주기 위해서다.

송효창기자 jyhc@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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