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뒤 맞는 추석연휴는 날씨로 갖혀있던 시민들에게 해방감에 들뜨게 한다. 친지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쉴 새 없이 내리는 비에 두문불출 하던 가족들에게는 5일간의 황금같은 휴식은 발길을 설레게 한다.

그렇다고 큰 마음 먹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엔 자칫 교통대란에 낭패를 보기 일쑤고 놀이공원이나 각종 위락시설을 찾자니 여러가지로 여건이 안맞는다.

이럴땐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지역의 전시와 공연 일정들을 꼼꼼히 챙겨보자. 잘만 선택하면 짧은 시간에도 가족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내며 자녀들에게도 유익한 일정이 될 수 있다는걸 잊지말자.

이번 한가위 연휴기간 인천지역에서 열리는 전시와 공연들을 소개해 본다.

■ 화가 박승천 열다섯번째 개인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추적을 화면 분할을 통해 시도하고 있는 박승천 화가가 어느덧 열다섯번째 개인전을 연다.

작품 크기가 예사롭지 않은 그다. 이번에도 대작 4점을 완성했다. 21일 개막, 27일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미추홀전시실에 작품을 건다. 하늘, 땅, 바다의 이미지를 각각 조형화한 작품과 작가적 공간을 이미지화 한 작품, 그렇게 4점이다. 크키도 500호짜리가 둘, 1천호에 또 하나는 무려 1천500호에 이른다. 갤러리 한 벽면을 덮을 만큼의 규모다.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소재로 씁니다. 가령 하늘을 이미지화 한 작품에는 구름이 등장한다든가 땅에서는 탁자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들 사물은 본래의 속성과 전혀 다른 의미을 지닙니다. 언어적 인용으로 구름이고 의자일 뿐이죠.”

화면속 사물들은 일부분이긴 하나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반면 전체 구도로 다가서면 다분히 추상적이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화면분할의 기법은 따로 따로 작업한 부분을 붙이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그 보다는 이중구도와 삼중구도의 양식을 선택한 후 화면을 이등분, 혹은 삼등분해서 이를 다시 결합한다는 것이 맞다. 얼핏 따로 인듯 하지만 전반적으로 흐르는 이미지엔 통일성이 있다.

김효선 큐레이터는 이를 이렇게 푼다. “박승천은 한 쪽 화폭에 시계와 파도와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다른 화폭엔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린다. 두 부분은 각기 별개의 예술이기 때문에 그 자체 예술작품인 두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은 다시 결합돼 각 부분의 조합 그 이상의 조화로운 전체로 만들어진다.”

대작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200호짜리 둘과 150호짜리 하나를 연결해놓으면 1천호가 된다.

전시 개막전 도록을 못 만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작품이 크다보니 제 느낌을 살려 촬영하기가 어려웠다고 전한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다른 재료를 시도를 하고 있는 그다. 바로전 전시에선 한지를 썼다. 이번엔 또 다르다.

형상을 많이 집어넣었으므로 보다 직접적으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던진다.

“화면을 잘라놓았으므로 한 느낌만 갖을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도 어떤 느낌을 공유했으면 합니다.” 작가는 바람을 전한다. ☎(032)864-6142.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 흙·美와의 조응전

인천·경기 도예작가 14인의 개성 넘치는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공통적으로 흙에서 출발, 고유의 질감을 살려내거나 우연적인 기법을 이용해 다채로운 색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흙을 다루는 손맛이 그득하다. 인천신세계갤러리가 작가들을 초대했다. ‘흙·美와의 조응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21일부터 10월1일까지 시민들을 부른다.

김태곤 작가는 식물 이미지를 모티브로 생성과 소멸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식물의 줄기와 뿌리가 주전자의 입과 손잡이, 뚜껑이 되면서 익살스러움을 품었다. 작가는 주전자에 형태의 운동감을 가미하면서 인간의 순환적인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정유근 작가는 물과 흙이라는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샘과 대지에서 생명력과 역동성을 발견, 이를 흙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샘의 이미지를 담은 ‘천원(泉原)’은 자연의 끊임없는 생명력을 담고 있다.

흙과 다른 요소들을 결합시킨 시도도 보인다. 차유종 작가는 흙으로 빚은 도자기 부조에 조명을 더해 심미적인 빛을 만들어냈다. 수퍼화이트 소지와 아크릴, 조명을 이용한 작품 ‘Butterfly Flower Bowl’은 애환적 느낌의 빛이 물씬하다.

비정형적인 형태로 위트를 재현한 작품도 눈에 띈다. 민광희 작가의 ‘魚’, 최지민 작가의 ‘축제’, 이정훈 작가의 ‘추억-주전자’가 그 작품이다.

이은재 작가의 ‘2007-끈’, 최정호 작가의 ‘효녀 심청’, 이동하 작가의 ‘청자삼족접시’에서는 예의 섬세한 손맛이 그득하다.

이와함께 김요안, 김형준, 조승연, 조이연, 하정미 작가가 참여했다. 모두 50여점에 달한다. ☎(032)430-1199.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 ‘베트남의 관문-하이퐁’ 특별전

추석 연휴 인천시립박물관을 찾으면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만나볼 수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인천과 베트남 하이퐁시의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해 베트남 하이퐁시 하이퐁박물관과 공동기획, ‘베트남의 관문 - 하이퐁’ 특별전을 연다.

지난 14일 개막, 10월2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하이퐁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182점이 전시된다. 한국에서 베트남 관련 유물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전쟁과 라이따이한, 이주노동자 등 70년대 이후부터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국제결혼과 베트남 펀드 등으로 한층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베트남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베트남 하이퐁시는 수도에서 가까운 임해도시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인천과 지리·역사적으로 매우 닮은 도시다.

하이퐁은 ‘바다를 방어하는 도시’란 뜻. 하이퐁시 역시 인천과 마찬가지로 수도 방어의 전초기지로서 도시의 성격을 갖고 있다. 19세기 말 외세에 의해 근대 도시로 변모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도 인천과 하이퐁의 도시 발전 형태는 매우 유사하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하이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중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을 엄선했다”며 “특히 하이퐁시 주변의 선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다수 전시한다”고 밝혔다.

하이퐁시 덤조우 지역내 통나무 배 모양의 무덤에서 출토된 ‘목제톱’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 북부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알려주는 ‘T자형 단검’, 나뭇잎 형태의 ‘쯩롱탑(1057년 건립) 파편’, 하이퐁 일대에 전해지는 수상 인형극 ‘조이 느윽’에 사용되던 인형 등 182점이 전시된다.

오후 4시 박물관을 찾으면 전시 유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관람이 가능하다.

인천시시립박물관은 특별전 기간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베트남 관련 영화도 상영한다. 22일 ‘굿모닝 베트남’(감독 베리 레빈슨), 29일 ‘알포인트’(감독·공수창) 등 5편의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토·일요일에는 ‘아오자이로 만나는 베트남’도 기획전시실 앞에서 진행된다.

인천시립박물관 배성수 학예사는 “인천-하이퐁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시회는 베트남의 문화를 알리고, 국인들의 베트남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을 없애보자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인천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을 통해 입국한 베트남 신부들이 추석연휴 모국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희기자 juhee@i-today.co.kr

■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추석연휴 시작을 알리는 22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발레리나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발레리나’. 아름다운 조명아래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니 무대 또한 그렇지 않을까.

아니다. 무대는 발레와는 거리가 좀 멀다.

길거리 춤꾼들의 힙합 댄스와 브래이크 댄서들의 무대가 공연 내내 펼쳐진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춤으로 발레리나의 우아한 자태를 대신한다.

발레리나 소연이 사랑한 대상은 어뚱하게도 비보이 ‘석윤’. 소연의 연습실에 힙합광장이 조성되며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연과 석윤의 사랑은 시작된다. 시끄러운 힙합 음악에 연습에 방해를 받은 소연과 그녀의 친구는 항의를 하러 갔다가 오히려 창피만 당하고 온다. 길거리 춤꾼들에 당한 충격은 오히려 소연의 마음에 사랑과 상처만 남겨준다. 결국 사랑을 선택한 소연은 프리마돈나의 꿈을 접게 되는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음지의 길거리 춤꾼들이, 양지의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만난 최초의 작품이다.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준 이 작품은 특히 어울리것 같지 않은 발레와 힙합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졌다.

이미 세계 정상급 실력을 인정받았은 한국 비보이들의 새로운 시도 역시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주며 한류의 한 축이 됐다.

세계 정상에 선 ‘Ollira Crew’ 멤버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얼마전 영국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호평을 받으며 전세계 무대 관계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내년에는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발레와 비보비란 서로 다른 장르의 혼합 무대가 펼쳐지듯, 이 작품은 힙합문화에 젖어 있는 일부 젊은이들만의 작품은 아니다. 현란하고 역동적인 무대는 어느새 우아한 무대로 이어지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추석 연휴 모처럼 모인 가족들의 선택으로 아깝지 않을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은 22일 오후 4시, 7시. 23일 오후 3시, 오후 6시. ☎1566-6551

김주희기자 juhee@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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