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인천의 대표적 부호로 알려진 서상집(徐相潗·1854년 대구출생)을 ‘한국형 매판(買辦)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19일 오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인하대 사학과 이영호 교수는 개항기 서상집이 이룬 부(副)의 축적 과정과 생활·문화상 등을 종합, “서상집은 현재까지 발굴된 개항장 경제인 가운데 ‘한국형 매판’의 가능성을 지닌 ‘동아시아 개항장 자본가형’에 근접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Chemulpo(제물포), Jinsen(진센) 그리고 인천’ 학술세미나는 인천시역사자료관이 개항기 외국인 상업세력과 관련한 학계의 논문을 발표한 자리다.

이 교수는 “아직까지 서상집의 매판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며 서상집이 개항초기 타운센드 순신창상회를 경영하면서, 외국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편 자신의 자본을 축적할 당시의 상황을 매판에 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미곡과 홍삼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다. 한강과 황해 연안을 중심으로 한 국내 유통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인천-상하이-요코하마를 잇는 동아시아 개항장 네트워크를 지향했다. 당시 친러파로 이용익을 비롯해 박영효, 유길준 등과 인연을 맺는 등 정치적 연계망도 구축했다.

이 교수는 “개항장의 매판은 외국 상인을 중개하면서 벼락부자가 됐지만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개항장의 발전을 주도 했다”며 “하지만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을 중개한 전형적인 주변인으로 두 문화에 속하지 않은, 두 문화를 한 몸에 지니는 문화 혼혈아”라고 설명했다.

서상집은 1896년 인천항의 객주를 모아 신상회사를 조직했다. 이 회사는 정부로부터 객주들의 상품 중개를 보장하고 그에 따른 이익 중 일부를 받았다. 신상회사는 당시 일본자본에 맞섰다. 특히 일본인 미두 거래소에 대항해 인천항의 상품중개권을 독점하려 했다.

이 교수는 “서상집은 분명 민족상인으로 평가할 수 있는 활동을 했고, 자본가로 성장해 여러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김주희기자 juhee@i-today.co.kr

▶매판이란

‘매판’은 중국 개항장에 등장한 존재로 외국회사의 중국인 책임자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상품거래의 중개인이다. 외국 자본에 붙어 사리(私利)를 탐하여 자기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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