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결국 무모한 승부수를 뽑아 들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그 기발함에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파장과 후폭풍이 걱정된다. 미국과 일본의 강경파들에게 호재를 제공해준 셈이 되었다.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에게 MD(미사일방어) 추진을 가속화시키는 명분과 남북관계 진전에 훼방을 놓을 구실만 만들어준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일본내 강경우파들은 군사력 증강과 우경화를 위한 좋은 명분을 얻었 신바람이 났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앞장서 이번 사태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유엔안보리를 통한 제재를 추진하고 있으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규제할 국제법적 근거가 없고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유엔 차원의 제재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개별적으로 금융제재의 강화 등 여러 수단을 통해 북한을 더욱 조여 갈 것이다.
남북관계의 손상도 예상된다. 미국은 대북제재에 한국의 동참을 요청하는 한편,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사회의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대북지원의 중단과 대북포용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섰다. 우리정부도 북한에 대해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북한의 행동을 봐서는 쌀과 비료 등 대북지원을 중단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과잉대응은 금물이다. 대북지원을 중단한다고 해서,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미사일문제가 해결되나? 또 대북지원금이 미사일 개발에 이용된다는 주장도 논리적 비약이다. 남한이 지원하지 않더라도, 또 설령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 죽더라도, 북한은 체제 생존이 걸린 미사일과 군부에 모든 역량과 경제력을 최우선적으로 쏟아 부을 것은 자명하다. 결국 고통을 당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뿐이다. 오히려 섣부른 지원중단은 남북관계를 크게 후퇴시킬 뿐만 아니라, 대북 지렛대와 발언권의 상실로 이어져 스스로 손발을 묶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쌀과 비료는 인도적 지원품목이다.
문제의 본질을 읽어야 해결책도 나온다. 북한의 ‘벼랑끝 버티기’는 미국의 ‘벼랑끝 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는 대북포용정책과 “대북 퍼주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의 산물이다.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부시 행정부다. 이번에도 북한이 두달 가까이 끌면서 뜸을 들일 때, 미국이 북한의 요청대로 힐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거나 북미간에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신호만이라도 보냈다면, 북한이 이처럼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협상기피가 가져온 결과다.
북한 미사일문제는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의 워싱턴 방문으로 이미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거의 해결될 뻔했다. 미국이 대북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는 대가로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고, 사정거리 300마일 이상 미사일의 개발·배치를 하지 않기로 북미간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북미간의 합의를 뒤엎어 버렸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올브라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선물을 가방속에 넣어 책상위에 올려놓고 왔는데, 부시가 차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 자제를 요구하는 동시에, 같은 강도로 미국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북미양자협상을 촉구해야 한다. 어설프게 미국의 입장만 추종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6자회담과 북미양자협상이 병행돼야 한다.
미국내에서는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비난하는 여론이 일고 있고 북미양자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반대로 우리는 대북지원 중단문제로 논란이나 벌이고 있는 상황이 한심하고 안타깝다.
더구나 일부 언론들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탓하고, 대북포용정책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들이 라면과 금사재기라도 하고 증시가 요동을 쳐야 정상이란 말인지? 그래서 국가신인도가 추락하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물밀듯이 빠져나가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는 것인지. 미국과 일본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에서 과장하고 과잉반응을 보이더라도 당사자인 우리가 침착하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국민들이 침착한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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