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진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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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말을 무려 35번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고 발언했다.

그가 검찰총장으로 임용되기 전 청문회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프리드만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라는 책이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그가 말하는 자유란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과연 프리드만이 제안한 선택할 자유가 우리 사회에서 수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또 그로 인한 폐해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시행하는 정책이 프리드만이 이 책에서 주장한 것들이 눈에 띄고, 그럼으로써 이것이 우리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그 주장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이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 공과를 살펴보는 것은 이 땅에서 사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프리드만은 그의 책 ‘선택할 자유’에서 자발적인 교환은 번영과 자유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결함이 있다. 자발적 교환은 당사자가 대등한 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상호간의 동의에 의해 교환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도의 빈곤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없다. 그는 또한 가격이 자발적 교환의 매개체로 된다며 격찬을 했다. 그러나 그리된다면 히틀러나 이토 히로부미와도 거래가 이루어져도 무방하다는 말이 된다. 윤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이 옳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는 또 연필을 살 때 백인이든 흑인이든, 구매자가 멸시하는 부류의 인종이 연필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와 상관없이 연필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동노동으로 만든 연필을 사는 것도 정당화될까? 그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회사가 제조한 연필을 사는 것도 가격이 싸기만 하면 정당화될까? 그는 그것도 당연히 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프리드만은 윤리적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시장의 효율성 측면을 살펴보자. 프리드만은 노동자들이 멍청하며(dumb) 모자랄 정도로 순진(naive)하다고 한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연필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도 모르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주장은 사람을 멸시하는 말이다. 연필이 무엇에 사용되는지 모르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그가 힘주어 말하는 증명이 전혀 되지 않은 주장이다. 고학력자들이 산업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현실을 망각한 주장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 인구의 10% 정도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사람들에게 지구가 둥글다고 믿게 한 것은 빌 게이츠의 음모의 결과라고 한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는 미국의 특수한 상황이지 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인구의 10%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다? 어림없는 말이다. 

프리드만은 또 주장한다. 사업을 하면서 지는 유일한 책임은 이윤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세를 하거나 사회적 목적을 위해 지출을 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지 기업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19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확진자의 폭증으로 병상이 부족할 수도 있고. 의료인력마저 감염돼 인력이 부족해지면 핵심적인 치료능력 외의 업무는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민간시설이 병상을 제공하거나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의료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민간 자원 봉사자 등의 힘이 보내질 때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고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 과정을 거쳐 코로나 19 사태는 수습국면을 맞고 있다.

오로지 이윤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병으로 대거 사망할 경우에는 사업자는 이윤을 창출할 소비자가 줄어들므로 사업의 유일한 목적이 이윤창출이라고 해도, 끝내는 그 이윤 창출에 실패하고 만다. 

1929년 대공황은 정부의 실패이지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1929년 대공황은 연방준비제도가 경제에 대한 통화제도 중앙집권화된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이사회가 프리드만의 제안을 받아들여 1979년부터 1982년까지 그의 주장대로 정책을 시행했다가 깊은 경기침체를 기록했다.

어디 이 뿐인가? 프리드만은  이른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하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필요한 실업과 경제적으로 낙후된 계층에 대한 대처방법이 그렇다.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했을 때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은 대처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이때 혜성같이 나타나 대공황을 극복할 처방을 제시한 사람이 케인즈이다. 케인즈는 경기가 급속도로 침체된 것은 구매능력을 갖춘 수요의 부족, 즉 유효수요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당시 미국 행정부에서는 이른바 뉴딜정책을 시행해 공황을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프리드만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정책(laissez-faire, 이하 ‘라싸페’라 칭함)이다. 라사페란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가능한 한 배제하려는 경제사상 및 정책을 말한다. 그러나 라사페 주장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시장기구)’에 의해 부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배분도 실현하며, 사회적 조화가 실현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논증하고자 하였으나 자본주의의 진전이 가져오는 현실상황은 그들의 신념을 뒤엎었다. 특히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주의가 독점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라사페는 지지를 잃고 말았다.

프리드만은 라싸페를 적극 옹호하며 그 당연한 결과로 정부개입을 혐오한다. 그 이유는 자유의 비용이 초래되고 경제적 효율성이 저하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적인 자유무역은 관세로 인해 지장을 받고 있으며 이 경우 경제적 효율성이 저하된다고 한다. 한 나라 내부에서는 고율의 세금과 규제로 인해 자유로운 거래가 제한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19세기의 영국과 대공황 이전의 미국, 현대의 홍콩이 이상적인 경제정책을 수행하고 있다고 상찬한다.  그가 보기에 인도는 중앙집권적 계획으로 인해 식민지 시절에 체득한 월등한 경제적 잠재력이 약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번 살펴보자  홍콩 정부는 2022년 홍콩경제 성장률을 -3.5%로 확정 발표했다.

교역규모도 전년대비 7.9% 감소했다. 이번에는 프리드만이 그리 비난했던 인도를 한 번 살펴보자. 인도 중앙은행(RBI)에 따르면, 인도의 GDP 성장률은 2022년 1월 2022/23 회계연도 9.2%로 전망됐으며, 투자, 고용, 무역, 제조 부문 모두 견조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됐다. 이는 프리드만이 판단한 결과와는 전혀 다른 수치이다. 

영국이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일으키면서 기계를 사용해 면직물을 대량으로 생산했으나 그 경쟁자가 어이없게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방직공들이었다. 인도 방직공들이 그들의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면직물을 손을 이용해 고급제품들을 만들어 내자 기계에 의해 대량생산된 면직물보다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그러자 영국은 면직물을 생산하는 인도 방직공의 섬세한 손이 영국 면직물업자의 이익을 해친다고 보고 방직공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이런 걸 두고 인도 방직공들의 선택할 자유가 증가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는 또 노동조합이 임금수준을 상향시킴으로써 그것이 제품가격에 반영돼 제품가격을 끌어올리고, 취업기회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았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한 분석도 이채롭다. 인플레이션은 정부의 과도한 지출과 연방준비이사회의 이자율 제한권한, 완전고용정책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윤석열 정부가 건설 현장 노조 활동을 ‘건폭’이라고 부르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그러자 지난 5월 1일 건설 노동자 양회동씨(50)가 분신했다. 양씨는 지난 1월부터 네 차례 경찰 수사를 받았다. 4월26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튿날인 5월2일 숨졌다.

프리드만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라고 평가받는다. 레이건은 그의 제안대로 경제를 라사페 상태로 몰고 가다가 급기야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이른바 쌍둥이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윤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반시장적인 정책을 폈다고 비난했다. 그와 경제를 보는 시각이 별로 다름이 없는 토플러는 그의 책 ‘제3의 물결’에서 돈에는 조국과 양심이 없다고 썼다. 날카로운 통찰력이다. 윤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바라는 것일까? 책임과 윤리가 없는 기업, 그런 기업이 횡행하는 경제를 대한민국에서 꽃피게 하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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