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는 서독의 총리이다. 1970년 그는 쏟아지는 폭우를 맞아가며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과거 독일의 나치가 한 만행을 반성한다는 의미다.

사실 그는 나치의 집권시절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는 총리로서 무릎을 꿇어가면서까지 폴란드에 깊은 사과를 표시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미국의 뉴욕 타임즈는 “빌리 브란트가 아우슈비츠에 가서 무릎은 꿇음으로써 독일이 일어섰다”라고 평가했다.

이번엔 과거 침략전쟁을 일삼은 이웃 일본으로 가보자. 일본 기시다 총리는 전임 아베와 마찬가지로 극우 정치인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가혹한 수탈을 하고 또 한국인 처녀와 그 부모를 속여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고 속여, 일본으로 끌고 가 가혹한 성노예가 되기를 강요했다.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이런 가증스런 짓을 한 것은 아니다. 일본 군인들은 중국 상해에 가서는 또 어떤 짓을 했는가?

1939년, 일제는 중일 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후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강간하고 학살했다. 약 20만명의 중국인들이 학살되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1939년 4월에는 1644 부대가 신설되어 생체실험 등이 자행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를 난징 대도살이라고도 부르며, 서구권에서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고 한다. 기간 면에서 따지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 사건 보다 더 짧은 기간 내, 집중적인 학살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나치보다 더 가혹했다는 평가를 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이에 대한 일본 극우파들의 반응은 어떨까? 피해 당사자국들이 열등감에 찌든 나머지 경미한 사건을 부풀려 사건을 과장한다거나 일본 정부의 지시나 명령이 없이 관동군이 독자적으로 자행한 일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뿐만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에 대한 사과와 배상에 소극적인 일본 측의 대응을 한국의 대통령이 선뜻 수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과거 한국의 대법원의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본 기업에 대해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피해보상을 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의 최고 법원에서 내린 판결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배상문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NHK는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과거 양국 간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한국 측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언급했다고 보도하자, 대통령실은 "관련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대통령실은 윤대통령이 바이든과 회동한 후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고 육성 그대로를 보도하자,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발언했다며 MBC가 국익을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비춰 보면, 대통령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왜곡하거나 거짓이라고 매도하는 습성이 몸에 밴 것 같기도 하다. 

극우인 아베 내각을 계승한 기시다 내각은, 극우답게 과거 일본의 이런 만행을 단 한 번도 시인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뉴욕 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일본은 총리가 뻣뻣하게 서서 피해국 국민을 내려다보면서 일본을 무릎 꿇렸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본의 기시다에게 성노예 문제는 해결되었다느니 기시다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언급했다는 보도를 접한 한국인들이 착잡한 심경을 내비치는 것은 결코 기우는 아닐 것이다. 

기고. 주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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