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떨어진 동백꽃을 보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발가 벗겨져
마침내 죽고 싶어진다
어둠 뒤로 숨고
안개 속으로 숨고
산 그림자 뒤로만 숨어 살던 내가
동백의 붉은 주검에 이끌려
햇빛 쨍한 대낮,
마당 한 가운데로
사정없이 내동댕이 쳐지면
눈썹 한 올 숨길 데 없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참혹한 정직
저 동백이 한 점 미련도 없이
허공으로 몸을 던져 지상에 닿는
그 찰나의 견딜 수 없는 죽음에의 유혹
무표정의 햇빛이
내 생의 죄의 목록을 읽고 있다
글.사진 -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