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의 여백

                                       박종영 

 

북국의 나라에서 이 겨울

첫 손님으로 찾아와 내리는 눈발.

 

초설이다 그래서 첫눈은

초경 치른 소녀같이 상큼하고

새침해서 흩날리는 기품도 상냥하고 수줍다.

 

경계가 없는 하늘아래

스스로 녹아내려 깃대없는 이정표를 꽂으며

메말라 푸석한 잡풀이거나 덤불 속이든

사그락대며 마른 잎에 부딪히는 둔탁한 아픔을 듣는다.

 

지난 밤 방탕한 내 명정(酩酊)의

여백 사이를 헤집어 파고드는 첫눈의 속삭임,

아픔을 참으라는 다그침의 소리다.

 

지금, 그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시급한데

그리움 같은 첫눈의 순정이

몸을 녹이며 눈물되어 흩날린다.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