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올해로 10회째를 맞는다. 하지만 부천영화제 안에서는 올해를 첫회 행사로 생각한다. 10회와 첫회.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지난 해의 제9회 행사는 부천시와 영화제 집행위원회 측과의 심각한 내홍으로 파행운영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이 뚜렷한 이유없이 해촉됐고 김 전 위원장은 9회 행사와 똑 같은 시기에 서울에서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를 개최하며 맞섰다. 부천영화제는 거의 ‘끝장’의 수준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올들어 새 집행위원장에 이장호 감독이 나서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지난 해 부천시 측의 과오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영화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했다. 그 같은 그의 노력이 반영된 듯 올해 영화제는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제로, 그래서 첫회 원년의 영화제로 새롭게 태어나는 분위기다.

다음은 이장호 감독과의 인터뷰.

-이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극복된 건가.
▲일단 영화제 조직이 크게 변화했다. 조직위원회 내에 있던 이사회를 없앴다. 그리고 영화를 잘 아는 실무자를 중심으로 집행위원회를 꾸렸다. 이제 부천영화제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것이다. 부천시의 것이 아니다.

-마음 고생이 많았겠다.
▲처음엔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워낙 내 성격이 낙천적이다. 하지만 부천영화제를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시선은 생각보다 훨씬 냉담했다. 영화제에 등을 돌린 영화인들이 너무 많더라. 그 사람들 한명 한명 따로 만나면서 설득했다. 다시 영화제에 애정을 달라고. 거의 읍소를 하고 다녔다고 보면 된다.

-읍소? 영화계 어른이?
▲(웃음) 젊은 영화인들이 현 영화계의 ‘실세’들이다. 이들에게 읍소하는 건 당연하다. 영화인들이 우리의 노력을 좀 더 알고 마음을 더 활짝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1회 집행위원장이었다. 그리고 다시 10회 집행위원장이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산부인과 의사 같은 기분이다. 아이를 받아서 부모에게 맡겼는데 10년 만에 아이가 아프다고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래서 수술을 내 손으로 해야 하는 기분.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간절하지 않겠나. 영화제를 보름 앞둔 지금은 긴 터널 속에서 고심하다가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는 느낌이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웃음)

-부천영화제가 원래는 상당히 대중적인 영화제였다.
▲맞다. 그랬다. 영화제를 시작할 때 처음 목적은 ‘당당한 오락 영화제’였다. 그리고 영화제로 보면 일종의 ‘마이너’한 쪽이었다. 보통 영화제는 오락보다 예술로 가니까. 하지만 세계 영화계가 점점 ‘판타스틱’하게 변했다. 이제는 판타스틱 영화들이 주류가 됐다. 판타스틱 영화들은 대중적 사랑은 물론, 예술적 작가주의자들이 다양하게 도전하고 실험할 수 있는 장르가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부천영화제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영화제인 셈이다.

-부천은 부산의 뒤를 이어 늘 2위 영화제라는 인상을 준다.
▲사실 내 팔자가 그렇다. 난, 항상 2위였다. 영화감독일 때도 김호선, 배창호 감독들에 밀려 항상 2진이었고.(웃음) 하지만 2위는 안전하다. 장점이 있다. 위를 보고 도전할 가능성이 그만큼 많이 열려 있기도 하다. 난 그게 더 좋다.

-임기가 3년이다. 임기동안 집중할 현안은?
▲사실 현안들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제를 영화제답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에서 진행하는 영화제는 어쩔 수 없이 ‘공무원적 감각’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 감각이 앞세워지는 영화제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관객들에게 한마디.
▲지난해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지만 부천은 변화하려고 피땀흘려 노력하고 있다. 이 마음을 관객들도 알아 줬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이 한마디도 좀. 카니발의 기분으로 영화제에 참여해 주길 바란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너무 점잖다. 튀는 복장, 튀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게 영화제다. 그게 바로 축제다. 부천에 와서 마음껏 즐기시기들 바란다."

오동진 영화전문기자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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