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동안 올마나 고생하셨어요. 아버지께 아들이 인사를 드려요.”




(▲제6차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열린 13일 대한적십자사 인천시지사 화상상봉장에서 남측 이상엽(93·가운데)할아버지가 북측 아들과 손자를 만나기에 앞서 남측 가족들과 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안영우기자 dhsibo@i-today.co.kr)

6.25전쟁이 일어나자 개성에서 피난을 떠나던 중 가족과 헤어진 이상엽(93·인천시 강화군)옹은 13일 오후2시 57년 만에 감격 속에 북측의 아들 리근홍(46)씨와 화상상봉을 했다.

당시 9세였던 코흘리개 아들은 이제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가 됐고, 아버지 이 옹도 이제는 아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얼굴 한 번 못 봤지만 누가 봐도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붕어빵 얼굴이었다.

이날 대한적십자사가 마련한 인천 상봉실엔 이 옹과 3남1녀의 자녀가, 평양 상봉실엔 리씨와 그의 아들 리철성(41)씨가 아쉬움이 섞인 눈빛으로 서로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옹은 전쟁이 장기화 되자 자신의 두 딸들에게 할어버지, 할머니 식사를 챙겨드리라며 집에 남겨두고, 그의 부인과 큰 아들, 큰 형님 내외와 함께 임진강을 건너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강이 얼어 배를 띄울 수 없게 되자 이 옹은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곤 가족들을 안전하게 데려오기 위해 먼저 강을 건넜다.

아버지가 강을 건넌 후 사흘 동안 기다리던 가족들은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갔고, 휴전 후 남쪽에서 온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리씨는 선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합장하고, 큰 아버지 내외와 작은 아버지 내외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이 옹은 북측에 두고 온 부인이 2002년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좀 더 일찍 못 만난것에 아쉬워했다. 이날 이들은 평생의 그리움을 2시간동안 달래며 흘러가는 시계초침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리씨는 이 옹에게 “아버지, 우리 통일이 되는 날 꼭 다시 만나요”라며 남측의 이복동생들에게 “그때까지 아버지를 잘 모셔달라”고 당부했다.

이 옹의 큰아들 이기일(50)씨는 “아버님이 형님 만나고 집에 가셔서 마음 고생하실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오늘 처음 형님을 뵙는데 정감이 가고 가슴이 찡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부터 14일까지 이틀간 제6차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8개 지사 12개 상봉실에서 진행된다. 지난 2005년 8월부터 시작된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5차까지의 행사를 통해 총 399가족 2천732명의 만남을 이뤄냈다. 이번 6차 화상상봉은 80가족이 모니터를 통해 혈육을 만나며 14일 인천에서는 4가족이 만날 예정이다.

조자영기자 idjycho@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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