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영석(17·가명)이는 부모님이 머리를 못 기르게 해 가출했다. 머리를 기르고는 학교에도 갈 수 없어 학교도 관뒀다. 나이를 속여 술집, 나이트클럽 등에서 일하며 친구와 함께 지낸다.

#2.미숙(18·가명)이는 가출한지 일주일 쯤 됐다. 가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두 살 아래 남자친구와 여관이나 친구네 집 등을 전전하며 지낸다.

지난 20일 인천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와 함께 부평역사 앞 분수 광장에 거리상담 부스를 차리고 청소년들을 만났다. 방학을 한데다 노숙을 해도 춥지 않을 만큼 날씨가 좋은 여름에는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도 늘어난다. 10시가 가까운 시각이지만 광장에는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석이도 그들 중 하나였다. 상담부스로 데려와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집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가출을 많이 해 봐 잘 안다’며 자신의 경험을 자랑하듯 늘어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11시 쯤 한무리의 아이들이 굉음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예닐곱 명의 아이들은 상담 부스로 스스로 찾아와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했다. “놀고 싶은 만큼 놀다가 아무때나 집에 들어가서 자고 또 나와요. 안들어가는 날은 공원이나 길에서 자기도 하구요.”

12시가 가까운 시각, 광장 구석 벤치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여자 아이 두명이 눈에 띄었다. 어제 가출을 한 여중생들은 연수구에 사는 친구네 집으로 가려는데 차비가 없어 가지 못한다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차비를 구하지 못하면 공원에서 잘 생각이라고 했다. 10시가 넘으면 피씨방에도 갈 수 없기 때문에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의 대부분은 거리에서 밤을 보낸다. 주변의 어른들도 사실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러 가출한 아이들이 밤에 찾아오면 쫓아내는 수밖에 없어요. 잠시 데리고 있다가 단속이라도 나오면 큰 일이니까요.” 부평시장 내 한 피씨방 주인은 아이를 돕고 싶어도 밤 중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받지 말라고만 했지 청소년들을 어떻게 인도하라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성업중인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은 가출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이다. 부평 로데오거리 24시간 패스트푸드점 점원은 “24시간 문을 열다 보니 새벽에도 아이들이 찾아오지만 그냥 둘 수만은 없어 경찰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 도망을 가버린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구월동, 을왕리해수욕장, 월미도, 주안역, 송도 등지를 찾아 청소년 상담을 해온 청소년상담지센터 관계자는 “낮에 만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진로 및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을, 밤에 만나는 아이들은 가출 및 성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도 부스를 찾은 30여명의 청소년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을 해 주었다.

김보기 사무국장 등 자원봉사자들은 “상담을 해보면 밤에 만나는 아이들이 위험에 더 많이 노출 돼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밤에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무조건 집으로 돌려 보내기보다 이들의 고민을들어주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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