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송도국제도시 수변공원으로 옮겼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천시 서구 공촌천에 가면 언제든 볼 수 있는 풍광이 있었다. 카누와 조정 선수들이 노를 젓는 모습이었다.

인천의 하천에선 드물게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도 공촌천이다.하류 폭 200m에 수심 10m로 인천서 가장 큰 폭의 하천이 바로 공촌천이다.

공촌천의 물은 너른 들판 청라경제자유구역(동아매립지)한 복판을 꿰뚫고 서해로 빠진다. 공촌천의 물길이 동아(김포)매립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김포매립지 간척사업은 1970년대 후반 중동 건설경기 침체가 발단이었다. 해외서 놀리고 있던 건설 장비를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동아건설이 매립사업을 허가받을 당시인 1980년 1월 국내 경제상황은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특히 동아건설은 중동지역의 건설경기 침체로, 건설장비가 죄다 놀고 있었다.




(▲동아건설이 중동의 해외 건설장비를 활용키 위해 쌀 자립기반 확립의 명분으로 조성된 김포매립지는 청라경제자유구역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중이다. 사진은 기반조성 공사 전의 김포매립지.)

정부는 ‘나라 밖에서 놀리는 중장비를 간척 등 매립 목적으로 국내에 들여올 때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는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농림부는 쌀 자립기반을 다지자는 명분을 내걸고 이미 ‘대규모 간척농지 개발사업 시행규칙’(농림부고시 제3041호)등 후속 조치를 마련한 상태였다.

매립면허를 얻은 동아건설은 그 해 6월 서구 원창·경서·연희동 등지의 공유수면 1천126만6천 평을 매립하기 시작했다. 11년에 걸친 이 농지확보 매립은 사업비만도 829억 원(1991년 준공연도 기준)이 드는 ‘대역사’였다.

매립이 한창이었던 1984년 4월 환경청은 서구 백석동에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사용 중인 난지도 매립장의 용량이 턱까지 차 쓰레기 매립장 확보가 수도권 시·군·구가 비상이 걸렸던 탓이다.

동아건설은 1988년 전체 매립면적의 55.7%인 627만7천 평을 수도권매립지 조성 터로 환경처에 넘겼다. 농업용지 확보가 목적이었던 김포간척사업의 절반 이상이 쓰레기 용지로 그 목적을 달리한 셈이었다. 이런 연유로 세계 최대 규모인 수도권매립지가 조성됐다.

여기에 5만5천 평은 한국전력의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로, 2만2천 평은 공촌하수처리장 등으로 이미 용도를 달리했다. 동아건설이 매립한 김포매립지 가운데 용도를 변경하고 남은 땅은 농지 370만 평이었다.

이 회사는 이 땅을 수년간 수백억원의 벌금을 물면서 나대지로 방치해 왔다. 한강 하류를 지척에 두고도 ‘논에 댈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계속 용도변경 요구했다.

그러나 동아건설의 용도변경 시도는 반대여론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농림부 산하 농업기반공사는 1999년 5월 자금난으로 부도위기에 몰린 동아건설로부터 평당 17만원씩 모두 6천355억 원을 주고 487만 평 중 370만 평을 사들였다. 땅을 판 동아건설은 2000년 11월 끝내 최종 부도처리 되고 말았다.

김포매립지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들인 농업기반공사는 연간 600억 원에 이르는 금융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정부는 ‘경제특구’인 청라경제구역이라는 이름으로 개발계획을 내놨다. 김포매립지 487만 평에다 주변의 청라매립지 30만 평과 사유지 25만 평을 포함해 모두 542만 평을 개발하다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485만 평은 토지공사가 공영개발하고, 57만 평(현재 는 43만3천 평)은 농업기반공사에서 첨단 화훼단지로 조성키로 했다. 지금의 청라경제자유구역이다.

토공이 평당 25만3천300 원에 사들인 청라경제자유구역의 땅 값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고 있다. 청라지구의 중대형 공동주택용지가 평당 평균 760만 원에 낙찰될 정도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진객 '흑두루미' 20년만에 돌아와


2005년부터 청라매립지서 겨울나기


2005년 3월 서구 경서동 공촌천 하류 인근 청라매립지에서 반가운 모습이 목격됐다. ‘겨울의 진객’(珍客) 흑두루미 스물아홉 마리가 이곳에 날아든 것이었다.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 무리가 청라매립지에서 발견된 것은 지난 1984년 이후 20여년 만에 일이었다. 세계적으로 1만 마리밖에 없는 흑두루미 무리가 시베리아 남동부 등지의 번식지로 이동하던 중 휴식을 위해 청라매립지로 내려앉은 것이다.

원래 공촌천 주변의 경서동과 연희동 일대 939만3천 평은 두루미 도래지로 1977년 11월 천연기념물 257호로 지정됐던 곳이다. 바닷가와 맞닿아 있어 작은 게와 갯지렁이, 조개 등 두루미의 먹이 감이 풍부한데다 갯골이 잘 발달해 있어 먹이활동을 하는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4년 1월6일 1마리가 죽은 채 발견된 이래 두루미는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결국 1988년 5월22일 천연기념물 지정조차 해제되고 말았다. 문제는 두루미가 김포매립지에서 사라진 것처럼 흑두루미 역시 청라경제자유구역 개발로 종적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이다.

토지공사가 제출한 ‘인천청라지구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서(초안)’에 청라매립지에서 겨울과 봄에 관찰된 조류는 모두 29종의 9천284 마리이었다.

환경부 보호종인 큰기러기가 6천 마리(전체의 64.4%)로 가장 많았다. 떼까마귀 1천300 마리(14%), 흰뺨검둥오리 370 마리(4%), 갈까마귀 270 마리(9%) 등도 관찰됐다. 천연기념물 323호인 잿빛개구리매도 발견됐다. 이들 철새들은 주로 공촌천 북쪽 습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농경지의 나락과 수생식물의 뿌리를 먹고 월동하고 있다.

토공이 청라경제자유구역 541만 평의 개발 사업을 위해 앞으로 부지조성 공사에 들어갈 경우 철새 서식지는 급속히 파괴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부지조성공사 등 사업이 진행되면 농경지에 서식하는 철새들은 사라지고, 도심이나 공원에서 주로 관찰되는 박새류와 멧새류, 참새 등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경부는 2002년 사전환경성 검토를 협의하면서 ‘청라매립지는 지리적인 특성상 철새도래지 또는 중간 기착지의 기능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수변공간조성 때 야생동식물의 대체서식지 조성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토공이 개발과정에서 철새 서식지를 얼마나, 어떻게 조성하는 지 지켜 볼 일이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매일 어머니 마중하던 소녀 샘물 마시고 아픈다리 고쳐


'깨금재'고개의 전설


인천시 서구 경서동 서쪽 바닷가로 쭉 뻗친 반도모양의 끝머리에 ‘깨금재’라는 고개가 있었다. 이곳에 닿으면 넓은 바다 건너에 청라도가 있고, 인천 항구가 마주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이 곳 부녀자들은 썰물 때가 되면 낙지·게·가무락·참맛 등 해산물을 잡으려고 쏟아져 나왔다.

머리에는 수건을 쓰고, 망태와 호미, 칼을 도시락과 함께 고리에 담은 아낙들 40~50명이 ‘깨금재’를 넘어 갯벌에 들어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왜 ‘깨금재’일까? 100여년 전 이 마을에 절름발이 소녀가 있었다. 천천히 걸을 때는 절뚝거리다가도 급할 때는 아예 한발로 뛰어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깨금깨금’ 한다고 놀려댔다.

이 소녀의 일상은 깨금재에 나와 갯벌에 나가 갯일을 하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깨금재 밑에는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어 오가는 이들의 목을 적셔주곤 했다. 이 소녀 역시 어머니를 기다리며 물이 솟아오르는 샘을 구경하며 샘물을 마시는 일을 일상으로 삼았다.

매일 같이 샘물을 마신 소녀는 얼마 후 절름거리던 다리가 정상인처럼 멀쩡하게 됐다. 사람들은 소녀가 샘물을 마신 덕에 다리를 고쳤다며 이 샘물을 약수로 칭했다. 이때부터 이 고개는 ‘깨금재’ 또는 ‘깨급재’라고 불렀다. 지금은 세월의 변화로 위치와 함께 깨금재의 설화도 사그러 지고 말았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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